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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 정신과 산문의 무늬

책 이야기

by 최용성 2007. 7. 13. 17: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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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의 글은 남다르다. 산문일 때 더욱 그렇다. “산문…속에는 우리 삶이 드러내는 여러 무늬에 진솔하고 섬세하게 접근하려는 다차원적 복합서사성만이 있을 뿐”이어서 “산문은 종종 실없이 공간을 이탈해서 기억의 내력과 꿈의 지평을 배회”하는데, 이런 속성을 살려 “마음을 다스리고 삶의 뜻을 일깨우는 이른바 심학적(心學的) 전통의 현대적 변용”을 이루려는 남다른 목표가 그의 글을 이끌고 있기 때문(인용문은 ‘책머리에’ 부분에서).  

 

    김영민 교수의 <문화 文化 문화 文禍 문화 紋和 : 산문으로 만드는 무늬의 이력>(동녘, 1998)은 여러 매체에 실렸던 산문들을 하나로 묶어 낸 책이다. 겉으로 보아선 한참 오래 된 데다가 시사성마저 잃은 ‘잡문’을 모은 책이라 흥미를 잃기 십상지만, 그 속에 담긴 생각은 지금 막 나온 어떤 신간보다도, 불행히도, 더 절박하게 새롭다. 그래서 이 책은 여전히 새로 나온 책이다.

 

   스스로 생각하는 고통을 마다하지 않는 그의 산문을 읽다보면 제대로 쓴 우리 글로 만들 수 있는 무늬가 뜻밖에도 다채로움을 느낀다. 시대를 거스른듯 고풍스러움과 만연체가 의연히 존재하는 그의 글은 마치 훈장 선생님 같은 의고적 취향이 풍기면서 생경한 긴장감을 불러일으키는 것이 매력이다. 그러나 형식만으로 좋은 글이 될 수는 없을 터. 그의 글쓰기에는 다양한 소재와 사유를 넘어 결국 주체의 문제로 통하는 하나의 사유패턴이 존재한다. 요컨대 ‘나’는 지금 어디에 있고 무엇을 하고 있는가, 그리고 어디로 가야 하는가라는 성찰이 그것.

 

   그의 생각을 거칠게 요약하자면 이러하다. 지금 ‘나’는 기본이 없는 사회에서 살고 있다. 그리하여 법고창신(法古創新)을 하지 못하고 식민성 담론에 사로잡혀 세상 일에만 즉자적으로 매달린다. 그리하여 ‘나’는 절맥(絶脈)된 상태. 그러니 싸구려 세계화와 졸부들, 냄비근성 등등이 판을 쳐댈 수밖에. 이것을 뛰어넘는 길은? “역사가 확인해 준 기본을 그 역사성의 흐름을 따라 지켜 나가는 것”(103쪽), 바로 그 길이다. 즉 역사를 아는 진정한 인문정신으로 돌아가야 한다. 이를 축약하는 표어가 “심층근대화”와 “뿌리깊은 진보”이다.

 

   실로 전문성의 힘과 아름다움은 오직 삶의 길이 묵혀진 역사에서 나온다(225쪽). 그러한 인문정신은 책읽기의 방법에서도 구현되어야 할 것이기에 나는, 독자들이 다음 말을 깊이 새기며 이 책에 실린 다채로운 산문의 결을 여행하시기를 권한다.

 

     배우는 자들이여(배우지 않는 자가 있는가?). 급속한, 그러므로 졸속한 날개짓을 삼가라. 조급한 날개짓으로 추락사하기 전에 어디 날개의 싹이라도 돋아 나왔는지 자신의 겨드랑이부터 점검할 일이다. 지계(持戒)에 깊은 뜻이 있다고 하는 것은 다 이를 두고 하는 말인 것이다. 고된 밤의 끝에서야 미명은 감미롭고, 책의 마지막 장을 넘기면서 비로소 첫 장의 뜻을 깨닫는 법. (19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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