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CD

거대한 저장고-멘델스존: 현악교향곡/ 협주곡 전집 SACD

최용성 2010. 7. 31. 23:05

 

 

    천재란 처음부터 완성된 존재라는 기준으로 보자면, 서양음악사 최고의 천재작곡가는 모차르트가 아니라, 코른골트와 더불어 펠릭스 멘델스존(Felix Mendelssohn-Bartholdy. 1809-1847)일 것. 유명한 8중주나 <한여름밤의 꿈> 서곡 같은 걸작 외에도 그가 10대 시절 작곡한 음악에는 빼어난 작품이 참 많다. 특히 하이든과 모차르트, C.P.E. 바흐의 정신을 계승한 듯한 13곡의 현악 교향곡들은 균형잡힌 형식미 속에 우아하고 활기찬 청춘의 표현을 담아낸 가작들로 10대 초반인 1821년부터 1823년 사이에 작곡되었다. 첫 작품보다 뒤의 작품이 더 발전된 모습을 보이는 것은 사실이지만, 10대 작곡가치고 들을만 한 작품이 아니라, 그 자체로 충분히 훌륭한 작품들이다. 제11번 F장조에서는 타악기도 등장하여 흥미를 더한다. 제8번 교향곡은 관악기가 더하여진 버전도 따로 있는데, 스웨덴 레이블 비스(BIS)의 SACD에는 원래 버전과 함께 수록되어 있다. 

 

    레브 마르키츠와 암스테르담 신포니에타라는 이름만 보아선 독일 음악과 별 상관이 없어 보일지 모르지만, 이들은 경쾌하고 발랄한 템포, 상큼하고 시원스러운 아티큘레이션과 다이나믹을 구사하여 텍스츄어를 투명하고 생생하게 드러내 불멸의 청춘이라고 할 멘델스존의 음악세계를 절묘하게 잘 표현해내고 있다. 다소 점잖고 달콤하며 기품있는 니콜라스 와드, 노던 신포니아의 낙소스 음반과는 상보관계가 되겠지만, 굳이 하나를 고르라면 암스테르담 군단 쪽이 충일한 생명력과 활력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더 매력있다.


    멘델스존의 협주곡 중에는 불멸의 걸작인 바이올린 협주곡 E단조가 단연 유명하지만, 피아노 협주곡 제1번, 제2번,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위한 협주곡, 2대의 피아노를 위한 협주곡들, D단조 바이올린 협주곡 등을 통하여서도 멘델스존만의 참신한 악상이 들려주는 시적인 아름다움을 한껏 맛볼 수 있다. 여기서도 마르키즈와 암스테르담 신포니에타가 들려주는, 상쾌하고 무게를 덜어낸 듯한 활기찬 협연이 빛난다.

 

 

    E단조 협주곡을 비롯하여 개별곡마다 다른 명연을 찾을 수도 있겠지만, 로날드 브라우티감(협주곡 전곡집의 진정한 주인공으로서 멘델스존 피아노 음악의 약동감, 시적 서정성, 찬란한 화려함, 그리고 종종 비치는 청춘의 어둠까지 기막히게 표현해내 제대로 주연 구실을 해낸다)이나 이자벨레 판 퀠렌, 로날드 푄티넨, 로베 데르빙거 정도라면 그 이름만으로도 충분히 믿을만한 독주자들 아니겠는가.  특히 다비드의 입김이 들어가지 않은 바이올린 협주곡 E단조 오리지날 1844년 버전의 첫 녹음이 담겨 있으니 그 가치는 이루 말할 수가 없다. 2007년에 나온 다니엘 호페와 오르페우스 체임버 오케스트라의 압도적인 명연(DG. 반드시 들어야 할 음반이다)에 앞서는 선구자격 연주이다. 물론 다니엘 호페는 같은 오리지날 1844년 버전이라도 비평판을 사용하여 세계 최초로 녹음하였다고 하니 세부적으로 차이가 나는 것도 같다. 여하튼 1844년 버전은, 바이올린이 주도하면서도 관현악과 우아한 균형을 달성한 최종판에 비하여, 관현악이 더 적극적이고 대담하며 정열적이라는 점에서 독자적 가치를 지닌다. 매력적인 재발견이다.

 

    비스(BIS)는 자신들의 CD 캐털로그에 있던 멘델스존의 현악 교향곡과 협주곡 전곡(CD로는 모두 8장)을 음반 2장―맞다. 단 2장이다―에 모두 담았다. 각 장마다 4시간 15분 정도라는 엄청난 분량이다. 이것을 가능하게 한 것은 SACD 포맷의 능력. SACD 싱글레이어에 스테레오 버전만 수록하여 CD 4장 분량을 1장에 담은 것. 물론 하이브리드 SACD와는 달리 이런 싱글레이어 SACD를 재생하려면 반드시 SACD 플레이어가 있어야 한다. 1990년대 원녹음인 16비트 PCM 데이터를 DSD로 변환하여 수록하고 있지만, 비스의 선명하고 균형잡힌 녹음은 흠잡을 데가 없이 빼어나고, 기분 탓인지 CD로 듣는 것보다는 질감도 더 유려한 듯하다. 놀라운 선물이다. 이런 기획이 더 늘어났으면 좋겠다.

(비스에서는 바흐의 오르간 전곡집이나 다울랜드의 류트 전곡집도 이런 식으로 발매한 적이 있어 SACD 애호가들을 즐겁게 하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