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상하고 기품있는 아름다움으로 기억되던 영국의 명배우 데보라 카(Deborah Kerr)가 돌아가셨습니다. 신문에서는 데버러 커라고 하던데, 이전부터 사용되던 데보라 카로 기억하고 싶습니다. 1921년 9월 30일 태어나 2007년 10월 16일 돌아가셨으니 파킨슨 병을 앓았다고는 해도 천수를 누렸다고 할 수 있겠지만, 강풀의 <그대를 사랑합니다>에 나온 말처럼, 세상에 호상(好喪)이 어디 있겠습니까. 어떤 슬픔과 아쉬움, 그리움이 밀려오는 것은 어쩔 수가 없네요. 얼마 전 루치아노 파바로티가 돌아가셨을 때도 그랬지만, 20세기를 빛냈던 예술가들이 하나 둘 세상을 떠날 때마다 제 젊음을 보낸 시대가 함께 점점 저물어가는 것을 느낍니다. 잊고 지내다가도 그들의 부고를 들을 때마다 이들이 제 삶과 정신적으로 얼마나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었는지 새삼 깨닫게 됩니다. 예술가들은 그렇게 우리들의 기억 속, 마음 속에서 불멸성을 얻나 봅니다.
노인이 되고나서는 젊은 시절의 빛나는 미모는 사라졌겠지만, 우리들 기억 속의 데보라 카는 늘 기품있고 찬란하게 아름다운 사람으로만 남아 있습니다. <쿼바디스>가 중앙극장에서 재개봉되었던 시기가 1986년 쯤이었나요? 그때 실존하는 데보라 카는 이미 60대가 넘었지만, 우리는 1951년 영화 속에서 본 그녀의 모습을 데보라 카의 이미지로 기억 속에 각인해 놓습니다. 우리가 비비안 리를 1939년 작품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나 <애수>를 통하여 평생 기억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지요. 기억 속에서 불멸이 만들어지는 순간입니다.
제가 기억하는 다섯 편의 영화에 나온 그분의 모습을 추억해봅니다.
먼저 마이클 파웰과 에머릭 프레스버거의 <검은 수선화> (Black Narcissus. 1947)입니다. 우리 나라에서는 <흑수선>이라는 제목으로―그래서 처음 제목을 보았을 때에는 배/바다에 관한 영화인 줄 알았답니다―개봉된 색채영화입니다. 히말라야 산간 오지의 수도원에서 벌어지는 인간들의 애증/욕망을 다룬 이야기이지요. 아름답고 청순한 이미지로 널리 알려진 영국배우 진 시몬즈가, 데뷔 작품인 이 영화에서는 놀랍게도 육감적이고 당돌한 이미지로 나옵니다. 영화는 심리묘사가 뛰어나고 이야기의 전개과정에 힘이 있으며 배우들의 연기가 훌륭합니다. 데보라 카는 신실한 수녀 역을 맡아 신앙과 인간적 욕망, 불안 사이에서 흔들리는 심리 상태를 설득력있게 잘 연기해냈습니다.
이 영화에서 특히 칭찬받을 사람은 발레리나가 주인공인 <분홍신>으로도 유명한 촬영감독 잭 카디프입니다. 그의 색채촬영은 60년이 지난 지금 보아도 놀랄만큼 참신하고 빼어납니다. 실은 이 영화에 역동적 힘을 부여하는 많은 장점이 카디프의 창의적인 촬영에서 나온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닙니다. 여기 소개하는 3개의 이미지만 보더라도 빛과 어둠, 색, 구도를 다루는 그의 촬영기법이 얼마나 훌륭한지 느끼실 수 있을 겁니다.
머빈 르로이의 <쿼 바디스> (Quo Vadis. 1951)는 걸작으로 평가받는 영화는 아니지만, 제작자인 샘 짐벌리스트가 뒤에 불멸의 걸작 <벤허>를 제작한 점에서 알 수 있듯이, 걸작으로 나갈 가능성을 곳곳에 깔고 있었습니다. 만약 상영시간이 더 길어지는 것을 감수하고 유연한 호흡으로 인물들의 감정선을 세밀하게 살려나갔더라면, 대사를 조금 더 지적(知的)으로 다듬고 이야기 전개에 역사적 정확성을 좀 더 부여하였더라면 이 영화에 대한 평가는 많이 달라졌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만큼 기본기가 탄탄한 영화입니다. 미술디자인과 의상, 세트, 촬영 등은 최고 수준입니다. 미클로시 로자(Miklos Rozsa)가 맡은 음악은 시대극 음악에 정격성이라는 개념을 본격적으로 도입하면서 현대적 드라마 감각과 조화시킨 점에서 영화음악사의 한 전기를 이룬 걸작 중의 걸작이구요. 게다가 배우들도 상당히 좋습니다. 데보라 카는 여주인공 리지아 역을 맡았습니다. 로마가 세상의 중심이며 그 힘은 군대에서 나온다고 믿는 단순무식한 보수주의 군인 마커스(로버트 테일러)를 당대의 진보사상이었던 기독교 쪽으로 개종시키는 과정이 설득력을 얻으려면 데보라 카 정도의 고귀한 아름다움을 가진 배우여야만 했을 겁니다.
이 두 사람이 사랑을 이루어가는 과정에서 데보라 카는 다소 딱딱한 로버트 테일러를 잘 이끌어나가는 연기를 보여줍니다. 특히 멋진 개선행진 장면에서 짧게 보여주는 데보라 카의 미세한 표정 연기는 리지아의 심리적 변화는 물론이고 영화가 흘러갈 방향을 한꺼번에 암시할 정도로 훌륭하였습니다. 문제는 배우의 잠재력을 극대화하는 이런 연출을 머빈 르로이가 시종일관 뚝심 있게 끌고 가지 못한다는 것이지요. 비록 그가 대감독은 아니지만, <애수>에서 비비안 리의 심리적 변화를 섬세하게 잡아낼 정도의 역량있는 감독이었기에 아쉬움은 큽니다. 그러나 <쿼바디스>는 탄탄한 기초 위에 잘 만든 영화이고, 여기서 데보라 카의 청순하고 고상한 아름다움은 눈부실 정도입니다. 더욱이 우리 관객들이 1980년대 후반에 서울의 중앙극장에서 다시 만난 작품이기도 하니(당시 흥행에도 성공하여 한 동안 헐리웃 고전영화들의 개봉 바람이 일기도 하였습니다) 이 영화를 통하여 데보라 카를 기억하는 분들이 특히 많을 겁니다.
프레드 진네만의 <지상에서 영원으로> (From Here to Eternity. 1953)는 화려한 아카데미 상 수상내역이 말해주듯 걸작으로 평가받는 작품입니다. 우선 배우들이 엄청납니다. 진주만 공습 직전 하와이의 한 미군부대를 무대로 펼쳐지는 이 인간 드라마에서 버트 랭카스터, 몽고메리 클리프트, 프랭크 시나트라, 데보라 카, 도나 리드 등은 희대의 명연기를 펼칩니다. 등장인물들의 심리를 절묘하게 끌어내는 진네만의 연출 덕분에 이들이 더욱 빛을 뿜어낼 수 있었겠지요. 특히 시나트라가 죽은 뒤에 몽고메리 클리프트가 진혼 나팔을 부는 장면은 언제 보아도 심금을 울립니다.
여기서 데보라 카는 청순하고 기품있는 요조숙녀라는 자신의 이미지를 완전히 뒤엎어 당대의 관객들에게 엄청나게 큰 충격을 줍니다. 남편의 부하인 버트 랭카스터와 불륜을 저지르는 여자로 나온 탓이지요. 그러나 사람들이 특히 충격을 받은 이유는 다른 데에 있었습니다. 해변에 놀러온 두 남녀가 수영복만 입고 해변에 누워 키스하던 장면에 압도된 탓이지요. 영화사에 남은 이 불멸의 명장면이 당대 사람들에겐 엄청난 문화충격이었나 봅니다. 더구나 고상한 데보라 카가 이런 짓을 하다니! 이미지만을 내세우는 스타가 아니라 진정한 배우임을 보여준 영화이지요.
제 생각에 리처드 로저스는 20세기 최고 작곡가 중 한 사람으로 꼽힐만 합니다. 베르디나 푸치니, 비제가 했던 일을 뮤지컬에서 한 이가 바로 그분이지요. 월터 랭의 <왕과 나> (The King and I. 1956)는 리처드 로저스와 오스카 해머슈타인의 뮤지컬을 시네마스코프 대형화면에 옮긴 영화입니다. 결과는 성공적입니다. 화려한 의상과 미술 디자인, 현란한 노래와 춤이 화면을 가득 채우며 관객들을 매혹시킵니다. 특히 율 브리너의 연기는 압권입니다. <왕과 나>는 태국역사에 실존하였고 널리 존경받는 왕을 희화화하였다는 비난을 받곤 합니다. 영국인 가정교사 안나가 서구의 가치를 기준으로 왕을 평가하고 가르치려고 드니 제국주의의 함의(含意)가 없다고는 말할 수 없겠지요. 그러나 여유로운 마음으로 영화를 다시 보면 생각이 달라집니다. 안나는 좁은 사고의 틀 속에 갇혀 태국의 고유성을 이해하지 못하는 편협한 사람으로 보이고, 오히려 왕은 힘겹게 새로운 문화를 배우며 그 안에서 생겨나는 가치관의 충돌 때문에 고민하면서도 변화와 소통을 위하여 애쓰는 사람으로 다가옵니다. 진정으로 돋보이는 사람은 안나가 아니라 오히려 왕입니다. 입체적인 왕의 캐릭터에 비교하면 기본적으로 안나의 캐릭터는 고상하지만 평면적이고 비현실적인 편입니다.
이런 안나를 입체적이고 현실감있는 캐릭터로 살아 숨쉬도록 만들어낸 것은 순전히 데보라 카의 공입니다. 비록 노래를 직접 부르지는 못했지만, 고상하고 아름다운 이미지의 그녀만큼 안나 역에 잘 어울리는 배우가 달리 있었을까요. 데보라 카의 선의와 고상함은 편협한 제국주의의 본질을 벗어나 깊은 신뢰를 줍니다. 그 결과 그녀와 율 브리너가 오해와 다툼 속에서 상호이해와 존경을 쌓아가는 과정은 어떤 보편적인 감동으로 이어집니다. 물론 영화의 진정한 주인공은 왕을 맡은 율 브리너입니다. 그는 여기서 춤추고 노래하며 기발한 대사로 관객들을 즐겁게 해주면서도 왕의 존엄성을 설득력있게 표현해냅니다. 그의 빛나는 연기 덕분에 태국이 놀라운 전통과 역사, 그리고 잠재력을 가진 위대한 나라이고, 그처럼 훌륭한 계몽군주가 있었기에 식민화를 피하고 자생적 근대화를 이룰 수 있었다는 점을 감성적으로나마 느끼게 되는 듯합니다.
두 사람이 함께 춤을 추는 장면에 흐르던 음악, 일본 영화의 제목으로도 원용되었던, "샬 위 댄스"를 듣고 싶습니다.
<잊지 못할 사랑> (An Affair To Remember. 1957년)은 맥 라이언과 톰 행크스가 나온 <시애틀의 잠못 이루는 밤>에서 주된 모티브로 원용된 데다가, 아넷 베닝과 워렌 비티가 주연한 <러브 어페어>로 리메이크되어 요즘 영화애호가들 사이에서도 꽤 유명한 작품이 되었습니다. 여행 중 만났다가 사랑한 두 사람이 6개월 뒤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에서 만나기로 합니다. 그러나 여자는 불의의 사고로 약속을 지키지 못하게 되고 남자는 여자를 오해합니다. 전형적인 연애영화이지요. 범작일 수도 있는 이 영화는, 데보라 카와 캐리 그랜트의 열연 덕분에 긴 생명력을 얻게 되었습니다. 두 사람 같은 선남선녀라면 저럴만 하다 라고 공감하면서 영화 속에 자연스럽게 빠져 들어가게 되는 것이지요. 데보라 카의 아름다운 모습과 빅 데이몬(Vic Damone)이 부른 주제가가 특별히 기억에 남는, 좋은 영화입니다.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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