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살다보면 쓸모없는 편견 때문에 좋은 기회를 놓치는 경우가 많다. 음악을 즐기는 일도 예외는 아니다. 평론가들과 애호가들 사이에 회자되는 명곡과 명반들만 찾아 헤매다 보면 진정으로 나를 행복하게 할 음악과 음반을 스쳐 지나칠 수도 있다. 보편성을 무시할 수는 없겠지만, 다른 사람의 취향을 나의 취향으로 치환하여 사는 것도 문제이다. 브루크너(Anton Bruckner. 1824-1896)의 음악은 종교적 숭고함을 불러일으키는 독일풍의 악상으로 말미암아 관록있는 독일-오스트리아 계 노거장 지휘자와 관현악단만의 독무대처럼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런 편견으로 말미암아 지휘자로서는 아직 애송이(?)인데다가 심지어 호주 여자라는 이유로 시모네 영(Simone Young)의 브루크너를 지나치면, 단언컨대, 엄청난 보물을 놓치는 것이다. 지앤 에드워즈(Sian Edwards. 펭귄가이드가 그녀의 차이코프스키를 최고로 꼽은 것은 우연이 아니다), 조앤 팔레타(JoAnn Falletta), 기젤레 벤-도르(Gisele Ben-Dor)를 거쳐 최근 각광을 받고 있는 마린 앨솝(Marin Alsop)까지 여성 지휘자들의 활약이 심상치 않은 점을 감안할 때 시모네 영의 등장이 결코 우연은 아니리라. 여하튼 오랜만에 들어보는 섬세하면서도 박력있는 부르크너 음반이다. 더욱이 명반이 많지 않은 제2번 교향곡에 오디오 파일조차 만족할만한 음반이 나왔으니 금상첨화이다.
바그너를 숭배하였던 브루크너는 자신의 작품에는 큰 확신을 가지지 못했다고 한다. 특히 브루크너를 돕겠다고 나선 주변 사람들이 문제였다. 그들은 브루크너의 상상력을 이해하지 못했다. 스스로 전문가라고 생각한 친지들은 자신들이 아는 기존의 악곡형식, 화성, 관현악법 등에 터잡아 브루크너의 교향곡을 난도질해댔다. 그러면서 진정으로 브루크너를 돕고 있다고 착각하였다. 물론 최종 책임은 우유부단한 브루크너에게 있을 것. 여하튼 이런 저런 형태로 난도질 당하다보니 브루크너 교향곡에는 여러 가지 판본이 존재한다. 브루크너에 처음 입문할 때에는 이런 판본 문제에 직면하게 되어 질리기 십상이다. 그렇지 않아도 무한반복하는 듯 스스로를 복제해가며 거대함에 이르는 그의 악상도 결코 쉽게 들을 수 있는 것이 아닌 터에, 그 수많은 판본이라니! 브루크너의 원래 의도에 가깝게 정리한 노박 판이나 하스 판이 나오면서 어느 정도 교통정리가 되었다고는 하지만, 지휘자들이 여러 판본을 제멋대로 절충하여 사용하기도 하니 계속 헷갈릴 수밖에 없다. 그래서 비상한 기억력을 가지고 있거나 브루크너를 깊게 연구할 마음이 아니라면, 판본 이야기는 잊어버리고 그냥 다양성이라는 측면에서 즐기는 것이 좋겠다.
교향곡 제2번의 경우도 판본과 얽힌 사연이 적지 않으나, 결론만 말하면 1991년에야 윌리엄 캐러건(William Carragan)에 의하여 브루크너의 원래 의도대로인 1872년 판본이 출간되었다. 1991년에 출간된 캐러건 판본을 사용한 것이 만년에 혜성과 같이 나타나 브루크너 애호가들을 열광시킨 게오르크 틴트너였고, 시모네 영은 2005년판 캐러건 판본을 사용하고 있다. 두 음반의 연주시간은 전체적으로 거의 차이가 없으나 아다지오 악장에서는 시모네 영이, 피날레에서는 틴트너가 조금씩 템포를 느리게 잡고 있다.
브루크너 교향곡 제2번에서는 교향곡 작곡가로서 브루크너가 성숙시켜 가게 될 개성이 이미 모두 나타나고 있다. 현악의 트레몰로를 깔고 관악기들이 주제를 부풀려 가며 무한 상승하는 듯한 악상, 악곡 진행 중의 잦은 휴지부, 익숙해지지 않았을 때 들으면 뜬금없다 싶을 정도로 갑작스러운 질주, 오스티나토의 거창한 반복, 오르간 같은 음의 파노라마, 성벽을 쌓아올리듯이 점차 거대한 건축물로 발전해가는 주제군의 덩어리 등등이 모두 브루크너 특유의 흔적이다. 여성이지만 시모네 영의 지휘는 전혀 유약하지 않다(여성이 유약하거나 섬세할 것이라는 생각도 실은 편견이다). 단적으로 말해 부르크너의 특징을 제대로 살려낸 연주이다. 그것도 아주 탁월하게! 특히 셈여림의 강약과 템포의 완급을 적절히 조절하면서 필요한 곳에서 서정적으로 노래하게 하고, 악기군을 하나로 융화시켜 오르간 음향과 같은 클라이맥스를 구축하여 거대한 세계를 창조해내는 시모네 영의 해석과 여기에 기민하게 반응하는 함부르크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연주는 단연 최고 수준이다. 정교하면서도 힘과 열기를 함께 지닌, 선이 굵은 연주이다. 실황녹음이나보니 흠잡을 데야 있지만 그런 것은 어떤 실황음반에라도 다 있는 법. 실로 새로운 브루크너 거장의 탄생이라고 할만 하다.
음반의 또 다른 장점은 SACD로 출시된 덕분에 라이브 녹음의 생동감을 즐기기에도 좋다는 점. 누가 뭐라고 하든 SACD는 분명히 CD와는 다른 차원의 음을 들려준다(마스터 녹음 자체가 별로인 일부 음반에서만 CD보다 못한 경우도 있기는 하다). 특히 멀티채널 재생에서는 보급기 수준에서도 3차원 공간감이나 홀의 공기감을 그럴듯하게 만들어낸다. 라이브 녹음인 이 음반에서도 멀티 채널로 재생하면 무대에 자리잡은 오케스트라를 현장의 객석에서 앉아 듣는 듯한 생생함에 빠지게 된다. 시모네 영, 함부르크 필하모닉, 욈스 클래식스 레이블의 제작자와 엔지니어 모두가 칭찬받을 자격이 있다.
앞으로 진행될 영과 함부르크 필이 만들어낼 사이클에 큰 기대를 걸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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