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보르작(Dvorak)의 교향곡은 제9번을 정점으로 제7번과 제8번이 걸작이고, 가장 많이 연주-녹음되고 있다. 상대적으로 그의 초기 교향곡은 큰 인기를 누리지 못하고 있는 편이다. 그러나 브람스의 교향곡 제2번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는 제6번은 독립하여 감상할만한 곡이다. 드보르작다운 체코 민요풍 선율과 리듬이 고전적 틀 속에 아름답게 구현되어 있기 때문이다. 제6번의 기조는 밝고 건강하다. 멜랑콜리한 둘째 악장도 결코 감상이나 슬픔에 빠지지 않는다. 여기에는 젊음의 자신감과 꿈이 새싹을 돋우려는 것처럼 꿈틀거리고 있다. 제6번 교향곡의 명연으로 가장 먼저 꼽고 싶은 연주는 정명훈이 비인 필하모닉을 지휘한 음반(DG 469 046-2. 교향곡 제8번과 커플링되어 있음)이다. 정명훈은 이 곡에서 곡이 지닌 낭만적인 색채를 최대한 끌어내고 있다. 프레이징과 템포를 적절하게 변화시켜 굽이굽이 밀고 당기며 짙은 음영을 만들어내고 있다. 비인 필하모닉의 풍성하고 윤기 흐르는 음향이 조합되어 다소 단조롭고 틀에 박히게 들릴 수도 있는 제6번 교향곡을 아주 참신하고 활기찬 음악으로 구현해낸 명연이 아닐 수 없다.
러시아 출신의 미국 지휘자 야코프 크라이츠베르크(Yakov Kreizberg)가 지휘한 암스테르담 네덜란드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연주는 호흡이 유장하고 광대한 표현을 보여주고 있다. 첫째 악장에서는 제시부의 반복을 고수하여 이를 생략한 정명훈보다 연주시간이 훨씬 길어졌고, 템포도 대체로 느리게 잡고 있다. 크라이츠베르크는 변화무쌍한 템포의 변화나 루바토 사용을 절제하고 있어 밀고 당기는 재미, 톡톡 튀며 사람을 흥분시키는 대목에서는 정명훈의 해석보다 재미는 덜하다. 대신 그는 곡 전체를 안정감 있게 자리매김하면서 다소 직설적이고 고지식하게 제6번이 지닌 또다른 세계를 펼쳐 보인다. 신랄함은 줄어들었지만, 자꾸 듣다보면 이처럼 기품있는 해석이 주는 매력도 상당하다. 지휘자의 해석에 부응하는 네덜란드 필하모닉의 연주도 흠잡을 데 없이 훌륭하다. 여기에 정명훈의 것처럼 조금만 음영이 가미되었더라면 더 흥미진진하고 완성도 높은 결과가 도출되지 않았을까 생각도 해보지만, 이대로도 훌륭한 성과이다. 역시 펜타톤 레이블에서 나왔던 드보르작 교향곡 제9번에서 보여주었던 크라이츠베르크의 실력이 우연이 아니었고, 더 성장하고 있음을 이번 제6 교향곡의 해석에서 실감하였다.
필업곡인 <물에 사는 고블린>(고블린을 요정이라고 번역하여서는 고블린이 갖는 魔性이 느껴지지 않으며, 마물이라는 번역도 어딘지 어색하다!)은 역시 원숙기의 작품답게 표현력이 세련되고 작곡가의 개성이 더 강렬하게 묻어나온다. 드보르작은 후일 그의 걸작 오페라 <루살카>(르네 플레밍이 히로인을 맡은 데카 음반을 추천한다)에서 유사한 소재를 다루게 되는데, 그것을 예견하는 듯한 이 교향시는 여러 면에서 흥미진진한 작품이다. 크라이츠베르크는 라파엘 쿠벨릭이 지휘한 바이에른 방송교향악단의 연주(DG)보다 템포를 느리게 잡아 곡의 세부를 정교하게 표현한다. 동시에 크라이츠베르크는 중도를 아는 지휘자답게 전체 그림도 아주 훌륭하게 잘 그려내고 있다.
녹음에 관하여서는 뭘 더 말할 것인가. SACD의 잠재력을 가장 잘 구현해내는 레이블 중 하나인 펜타톤과 폴리힘니아의 일급 엔지니어들의 합작품이라는 설명이면 충분하다. 자연스러운 3차원 음장에 악기들 고유의 톤이 자연스럽게 공명하는 듯한 스무드한 소리는 PCM이 아닌 순수한 DSD 방식의 녹음이 갖는 최대 매력이 아닌가. 추천한다.
미클로시 로자(Miklós Rózsa) : 3개의 합창모음곡-벤허, 쿼바디스, 왕중왕 (0) | 2009.08.27 |
---|---|
샤를르 투르느미르 : 신비한 오르간 음악 (0) | 2009.04.22 |
라벨의 볼레로 (0) | 2008.11.08 |
시모네 영이 지휘한 브루크너 교향곡 제2번 (0) | 2008.08.29 |
슬픔의 노래 (0) | 2007.10.05 |
댓글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