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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변호사, 금권변호사

인권과 법 이야기

by 최용성 2009. 10. 5. 1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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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재정권이 사람들의 눈과 귀와 입을 막던 시절, 불의에 맞서 싸운 변호사들이 있었다. 사람들은 존경하는 마음으로 그들을 인권변호사라고 불렀다. 변호사의 사명에는 당연히 인권 옹호가 들어가는데, 왜 이런 명칭이 생겼을까. 변호사라면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 해서는 안 될 일, 하려면 불이익을 감수해야 할 일이 되고만 부조리한 세상 때문이었다. 그 시대를 살아간 모든 변호사에게 인권은 중요한 화두였겠지만, 모두가 인권변호사처럼 용기있게 살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거기서 자조 섞인 유머가 나왔다. 인권변호사가 못되는 사람은 돈을 더 좋아하는 ‘금권(金權)변호사’라는 것. 변호사는 돈만 밝힌다는 사회통념뿐만 아니라 여러 가지 분쟁이 돈 문제로 귀결되는 현실을 반영하면서도, 인권변호사의 존재 앞에서 한없이 작아지는 ‘보통’ 변호사들의 씁쓸함이 담긴 말이었다. 다행히 사회가 민주화되면서 ‘금권변호사’라는 말은 기억 저편으로 사라져갔다. 인권의 사각지대에 놓인 사람들이 여전히 많기는 하지만, 거대한 절대악과 싸우던 인권변호사는 과거의 유산임이 분명해 보였다. 인권변호사냐, 금권변호사냐라는 선택을 두고 더 이상 고민할 필요는 없어졌다. 정녕, 그렇다고, 믿었다. 그런데, 그런데, 그것이 아니었다. 

 

조영래(1947-1990)

 

    제 정신 가진 사람이라면 인륜을 앞세워야 할 때 법을 말하지 않는다. 배고프다고, 아프다고, 살려 달라고 도움을 외치는 사람에게 먼저 법을 들이대지도 않는다. 정당성을 지닌 정부는 법의 이름으로 처벌을 강화하겠다고 국민을 위협하지 않는다. 국가가 정해둔 경계가 유일한 법의 내용이라고 말해서는 더더욱 안 된다. 민주사회에서 법은 국가권력의 남용을 억제하고 개인의 자유와 인권을 지켜가는 과정 속에서 성숙하고 구현되는 그런 것이다. 법은 있는 듯 없는 듯 자연스럽게 이치에 맞게 흐르면서 사람들이 소통하고 동의해가는 절차 속에 존재한다. 민주사회에서 법은 더 이상 국가권력의 독점물이거나 통치수단이 아니다. 그러나 21세기 대한민국에서 국민이 선출한 정부는 법을 권력의 통치수단으로 돌려놓기에 바쁘다. 용산참사도, 촛불집회에 대한 강경진압도, 평화적 집회 · 시위의 원천봉쇄도, 폭력진압에 항의하는 현직 변호사를 연행하여 구금하는 일도, 집회 현장의 시민은 물론이고 국회의원이나 성직자들조차 예사로 폭행하는 일도, 몇 년치 개인 이메일을 샅샅이 파헤쳐 공개하는 일도, 인터넷에 올린 글로 필자를 구속하는 일도, 국민 다수가 반대하는 미디어법 날치기도, 현직 장관의 명예를 훼손했다며 방송보도를 수사하는 일도, 고소 · 고발도 없이 언론소비자운동을 수사하는 일도, 무리한 수사로 전직 대통령을 죽음으로 몰아간 일도 모두 국가권력이 내세운 그 법의 이름으로 행하여졌다. 생명도, 생존권도, 표현의 자유도, 사생활의 비밀도, 주권자인 국민의 뜻도 모두 권력자의 법 아래에 있다는 듯 거침없이. 그야말로 거침없이. 주객전도이다. 법의 진정한 주인인 국민들이 국가권력이 정한 가이드 라인을 넘어서는 안 될 의무만 부담하는 법의 대상으로 전락하고 있으니 말이다.

 

   어떤 이들은, 대통령을 맘껏 욕하고, 법을 어겨가며 시위하고, 언론이 정부를 비판할 수 있는 지금이 어찌 독재이고 인권 후퇴냐고 하면서 오히려 자유의 ‘과잉’을 비난하고, 엄정한 법질서 확립을 권력에 주문한다. 이러한 인식의 배경에는 법을 규정하고 행사하는 독점적 권한이 국가권력에게만 있고, 시민은 국가가 정한 법의 테두리를 벗어나는 행동을 해서는 안 되며 이를 다투려면 오로지 사법절차에 따라야만 한다는 형식적 법치주의가 깔려 있다. 근대 독일에서 정점을 이룬 형식적 법치주의에는 개인의 인권에 대한 고민이 전혀 없다. 독일에서 공부한 법학자들의 영향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독일이 인권선진국이고 그들의 법체계나 법의식이 민주적이라고 믿는 경향이 있지만, 사실은 정반대이다. 독일은 절대왕정을 무너뜨린 민주혁명의 경험이 없다. 세상에 공짜는 없는 법이라 개인의 자유가 국가보다 더 앞선 가치라는 자유주의 정신은 오랜 기간 독일인의 일상에 잘 자리잡지 못했다. 자주적인 근대법 계수 노력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불행히도 우리는 일본의 식민지 지배를 통하여 형식적 법치주의에 기반을 둔 독일법을 계수 혹은 이식받았다. 원래 일본은 당시 유럽의 ‘으뜸’ 선진국인 프랑스법을 계수할 계획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보불전쟁에서 철혈재상 비스마르크가 이끌던 절대주의 국가 프로이센이 프랑스를 이기면서 독일법이야말로 부국강병을 위한 최선의 법으로 재평가되었고, 결국 군국주의를 국가목표로 잡은 일본은 국가우위사상에 기반을 둔 독일법을 계수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 영향은 우리 법에 여전히 남아, 틈만 생기면 국가우월주의나 집단주의 사고, 유달리 공안을 강조하는 법집행기관의 행태로 되풀이하여 돌아온다.

 

   역사를 보면 권력자들이 통치를 위하여 내세우는 법은 늘 문제였다. 소크라테스도, 예수도, 안중근도, 조봉암도, ‘인혁당’ 사람들도 모두 그 법의 이름으로 살해되었다. 현명하게도 키케로는 말했다. “법의 극치는 불법의 극치”라고. 독일의 법학자 라드브루흐는 원래 법적 안정성을 가장 중요한 법이념으로 확신하던 사람이다. 그랬던 그도 부정의의 극치인 나치 시대를 겪고 난 다음 생각을 바꾼다. 참을 수 없을 정도로 정의를 위반한 법률 즉 법률적 불법은 정의 즉 초법률적 법에 그 자리를 양보하여야 한다는 것. 이것이 라드브루흐 공식이다. 국가권력이 법을 내세워 정의를 짓밟을 때 시민은 정당한 법을 내세워 불복종하고 저항할 권리가 있다는 생각, 국가는 보편적 인권을 존중하고 옹호할 때만 정당하다는 생각은 이제 국제사회에서 널리 공유되고 있다. 나는 평범한 ‘금권변호사’로 살아 왔지만, 적어도 변호사와 변호사단체는 사회의 약자, 권력자가 내세우는 법으로 유린당하는 사람들의 절박한 마음을 끌어안고 공감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자유와 인권의 과잉을 걱정하면서 국가 공권력의 권리를, 권력자의 고충을 이해하고 질서확립을 주문하는 것이 변호사의 사명은 아닐 것이다.

 

   인권은 서로 연결된 고리들과 같다. 가장 약한 고리가 끊어지면 인권 전체가 위축된다. 검찰이 개인 이메일을 공개한 이후 벌어지는 사이버 망명 사태를 보라. 거기엔 저항만 있는 것이 아니라 진정한 공포가 있다. 이런 식으로 인권은 과거로 후퇴한다. 평범한 변호사에게 인권변호사냐, 금권변호사냐라는 선택을 강요하는 이 시대는 진정 불행하다.

 

* 웹진 <시민과 변호사> 2009년 8월호에 실린 글입니다.  http://webzine.seoulbar.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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