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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갈래 길-김현채와 추정현의 최옥삼류 가야금산조 SACD

SACD

by 최용성 2010. 12. 24. 16: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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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악을 평소 자주 듣는 편도 아니고 그다지 아는 것도 없으니 그냥 느끼는대로만 말해본다. 추정현의 가야금산조는 정말이지 남다르다. 정말, 특별하다. 밀고 당기고, 조이고 풀며 섬세한 음빛깔을 다양한 결로 풀어내는 일이야 훌륭한 가야금 연주가 지녀야 할 기본 덕목이지만, 추정현처럼 대목마다 가락과 장단을 쉽게―클래식 음악에 견주어 말하자면 프레이징이 보이는 것 같아 몰입하기가 쉽다―풀어내면서 자칫 흐트러져 지루해질 수도 있는 산조의 전체 흐름을 조망하여 절정으로 끌어가는 연주는 흔치 않다. 

 

    추정현의 연주는 가야금의 여성성을 예민하게 살리면서도 강력한 추진력을 지니고 있어, 연주자 스스로 이야기하는 극치감이라는 측면에서, 다른 연주자는 따르기 힘들 정도로 압도적인 아우라를 뿜어낸다. 추정현의 농밀하면서도, 높은 소리가 조금 강조된 듯한 음색이 빚어내는 팽팽한 긴장감과 질주하는 듯한 속도감은 곳곳에서 전율을 불러일으킬 정도이다. 바이올리니스트로 치자면 하이페츠와 같이 예민하면서도 과감하게 곡의 본질에 바로 가닿는 그런 힘이 느껴진다. 어찌 보면 전통적 산조 연주와는 달리 낭만주의 음악의 소나타를 연주하듯 정확하면서도 자유로운 명인기를 선보이는 듯한 긴장의 미학이 추정현만의 독특한 매력은 아닐까. 

 

    담양 소쇄원에서 한 번에 이루어진 녹음은 그 공기와―좀 과장하자면―바람의 흐름이 느껴질 정도로 생생하다. 풀벌레의 울음소리가 여백을 타고 들려오는 느낌이 아주 좋다. 자연 공간 속에 스며든 가야금의 생생함을 잘 살리고 있다. 이런 분위기를 스테레오로도 충분히 맛볼 수 있지만, SACD 멀티채널로 들으면 더욱더 생생해진다.

 

    같은 최옥삼 류를 연주하지만, 김현채의 가야금산조 SACD는 전혀 다른 느낌을 준다. 팽팽한 긴장 속에 산조의 극치감을 들려준 추정현과는 달리 김현채는 음 하나하나를 정성스럽게 음미하며 농현 자체의 매력을 맘껏 풀어낸다. 섬세하고 부드럽지만, 호흡이 길고 농현의 진폭이 커서 마치 거문고를 듣는 듯한 호방함이 있다. 그 결과 추정현의 것보다는 남성적인 가야금 산조처럼 들린다. 김현채 가야금 산조의 호방함은 고수의 추임새에서도 두드러지면서 서로 상승작용을 만들어낸다. 뒤로 물러선듯 가야금을 도우며 녹아들어가는 추정현의 고수 윤호세(북)와는 달리 김현채의 고수인 김동현(장구)은 적극적으로 추임새를 넣으며 개입한다.

 

    전통을 넘어가려는 듯한 추정현과 달리 김현채 쪽은 온고이지신에 더 가까운 느낌이라고 할까. 그렇게 두 사람이 최옥삼 류 산조에 접근하는 방식은 상당히 다르다. 새울음 소리가 간간이 들려 운치를 더해주는 것은 한옥 녹음만이 주는 보너스이다.

 

    녹음은 추정현 음반과는 많이 다르다. 일단 추정현 음반보다 음량이 더 크고 직접음이 가깝게 잡혀 있는 듯하다. 그 결과 가야금이 좀 더 눈 앞에 다가와 연주하는 것처럼 들린다. 그리하여 가야금 녹음에서 포착하기 어려운 성량(聲量)의 풍부함과 짙은 공명을 얻고 있다. 악기의 존재감과 소리의 밀도가 대단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야금 소리 자체는 귀를 자극하기보다는 풍성하고 여유롭게 들린다. 연주자의 개성과 악기음을 잘 포착한 뛰어난 녹음이다.

 

    반면 추정현의 음반은 음역대가 중고역에 집중되어 다소 날카롭지만 질감이 살아나며 연주공간 사방이 활짝 열려진 것처럼 주변의 공기감이 더 느껴진다. 이것이 김현채의 가야금에 더 근접하여 마이크를 세팅하였기 때문인지, 아니면 비슷한 마이크 세팅을 하였지만 녹음장소가 달라진 데에서 비롯된 것인지, 녹음기자재가 달라서인지, 아니면 연주자들마다 악기의 울림이 달라서인지 음반을 비교하여 듣는 것만으로는 알 길이 없어 악당이반에 확인하여 보았다. 그 결과 소쇄원은 양면이 트인 누마루인 반면, 함양한옥은 안방구조로 안채의 겹문구조(일종의 더블 창호지 스튜디오)여서 그런 차이가 발생하였다는 답변을 받았다.

 

    악당이반의 녹음은 다른 어떤 국악 레이블보다 탁월하지만 악기의 실재감을 강조한 때문이지 클래식 음반에 익숙한 내 귀로는 간혹 에너지 감이 좀 과하다는 느낌이 들기도 하는데(한옥에서 직접 국악 연주를 들어본 일이 없어 정확한 느낌은 아닐 수도 있다. 다만 스튜디오 녹음인 이동신의 단소산조에서도 음이 더 강하므로 음량에서 불리한 국악기의 실재감을 강조하는 것이 악당이반의 녹음철학일 가능성은 있을 것이다), SACD 멀티채널에서는 주변 공기감이 생겨나 이런 느낌이 끼여들 여지가 적어진다.

 

    김현채와 추정현은 최옥삼 류 가야금산조에서 각자 두 갈래 길을 찾아내 산조의 지평을 넓히고 있다. 이런 뛰어난 성과를 SACD의 빼어난 음향으로 담아내 기록으로 남긴 악당이반에게 갈채를 보내지 않을 수 없다. 두 음반 모두 강력추천!

 

* 모든 점에서 잘 만들어진 음반이지만, 몇 가지 사소한 점을 지적하고 넘어가자. 우선 사람 이름 영문표기이다. 연주자 이름은 영어식으로 성을 뒤에 두면서 ‘최옥삼 류’ 부분에서는 한국 대통령 이름 표기하듯이 한국식으로 쓴 것은 일관성이 없다. 우리 연주자는 우리 식으로 쓰는 게 적절하다고 본다. 국악분야라면 더더욱 그렇다. 다음으로 고수를 케이스 뒷면에 표기하지 않는 습관도 바로 잡히기를 기대한다. 산조는 고수 없이 연주할 수 없다. 그 다음으로 한 번의 테이크만으로 음원을 만드는 역사적 사건이 담긴 음반이니만큼 연주장소와 녹음날짜, 엔지니어의 이름을 음반 케이스 뒤에서 바로 읽을 수 있으면 더 좋겠다. 녹음에 사용된 마이크와 레코더, 녹음방식(DSD인지 DXD인지 PCM인지) 등을 내지에 밝혀주면 더 좋을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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