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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균형: 오피츠의 슈만 피아노 협주곡 SACD

SACD

by 최용성 2012. 6. 6. 1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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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대한 음악, 위대한 연주를 결정짓는 요소는 무엇일까? 그런 것이 존재하기는 하는 것일까? 모든 평가는 자신의 취향이나 선호를 정당화하는 언명(言明)에 불과한 것은 아닐까? 색다른 문제제기는 아니지만, 갑자기 이런 생각이 떠오르는 이유는 오피츠의 슈만 앨범을 들으며 이것이야말로 위대한 음악에 맞는 위대한 연주가 아닐까 하는 '어떤' 확신이 생기기 때문.

 

    잘 알려져 있듯이 슈만의 피아노 협주곡, A단조, 작품 16은 좀 특이한 배경을 가지고 있다. 비르투오조 협주곡을 작곡하고 싶어 하지 않았던 슈만은 형식면에서도 독특하게 단일 악장의 환상곡을 피아노 협주곡의 새 모델로 삼으려고 하였다. 물론 그 시도는 3개 악장의 협주곡을 원했던 당대 음악계의 요구에 부딪쳐 좌절되었다. 덕분에 우리는, 그야말로 간주곡이라는 명칭이 잘 어울리는, 짧고 아름다운 둘째 악장과, 낭만적으로 다채롭게 변화하는 마지막 악장을 얻었다. 그래도 이들 두 개 악장을 합하여야 첫째 악장과 비슷한 양이 되니 첫째 악장에 모든 것을 쏟아 부었던 슈만의 원래 악상은 살아 있는 셈이다.

 

    슈만의 피아노 협주곡 음반은 참 많다. 일필휘지로 몰아가는 듯한 정열적인 질주와 큰 스케일로 강렬한 인상을 남기는 리히터와 폰 마타치치(EMI/ Warner), 섬세하고 긴 호흡으로 시적인 악상을 펼치면서 밀고 당기는 세부 묘사와 동시에 악구 대비에도 탁월한 피레스와 아바도(DG), 명쾌하고 정교하면서도 역동적인 안즈네스와 얀손스(EMI/ Warner) 등등 명반이 많다. SACD로는 알브레히트가 지휘하는 스트라스부르 필하모닉과 함께 헬름첸의 섬세하고 다소 여성적인 피아니즘이 섬세하게 전개되는-해석 면에서는 어느 정도 호불호가 갈릴만한-펜타톤의 우수한 녹음도 있다.

 

 

    오피츠와 안드레에/ 밤베르크 심포니의 조합에는 뭔가 특별한 것이 있다. 기본 골격은-실체가 없이 모호하여 별로 사용하고 싶지 않은 표현이지만-정통 독일 음악답다. 오케스트라는 적절히 중후하고, 오피츠의 피아노는 음악의 전체적 윤곽을 잘 그려낸다. 게다가 슈만의 음악을 이루는 모든 요소가 자연스러운 조화를 이룬다. 섬세하고 호흡이 충분하면서도 정열적이고, 시적이면서도 산문적이다. 하나로 치우침이 없다. 슈만이 만들어내는 테마는 전혀 겉돌지 않고 유기적으로 통합되어 흘러간다. 듣는 이를 빨아들이는 힘은 오피츠와 안드레에가 보여주는 놀라운 집중력과 균형감각에서 비롯된다. 곡의 구석구석을 제대로 다 파악한 연주자들만이 들려줄 수 있는 경지이다. 그냥 들으면 기발하거나 새로운 점은 없는 것 같은데, 들을수록 자연스러워 곡의 아름다움을 다시 발견하게 된다. 지휘자 안드레에가 슈만 전문가라는 북클릿의 설명에도 공감이 간다. 흔히 커플링되는 그리그가 아니라, 슈만의 유사 협주곡 3곡을 함께 들을 수 있는 것도 큰 선물이다. 모두 슈만의 매력이 잘 살아나는 곡들이다.

    음반에 대한 평가에는 녹음 수준도 큰 몫을 한다. 내가 들은 슈만 피아노 협주곡 음반 중 녹음의 질이 가장 우수하다. 전체적 골격이 강건하면서도 세부가 자연스럽게 드러나며 유기적으로 조화를 이루는 훌륭한 녹음이다. SACD 멀티채널로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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