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인들은 자연을 낭만화시켜 영혼을 위로하는 안식처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자연은 결코 평안을 주는 곳만은 아닙니다. 흙이나 황토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자연에는 거칠고 공격적이고 우리를 불편하고 힘들게 하는 것도 수없이 많습니다. 이호중 화백의 풍경화에서는 자연에 담겨져 있는 이런 야성이나 공격성이 사상(捨象)됩니다. 황토를 소재로 한 다른 작가의 작품보다 이호중 화백의 황토 그림이 더 따뜻하고 편안하게 느껴지는 것은 작가가 도시인들이 황토를 통하여 바라는 위로 받고 싶은 욕망을―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포착하여 화폭에 실현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의 농촌풍경은 목가적이고 따뜻하지만 사실주의의 관점에서 보면 다소 기만적이라고 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어차피 작가는 자신이 본 대상을 관념에서 재구성하여 화폭에 실현하는 존재입니다. 그것이 잘못된 선전이나 선동을 위한 기만이 아니라면 대상의 어떤 측면을 포착해 작가 고유의 관념으로 화면에 담아내는 것은 그의 전권이라고 인정하여야 할 것입니다. 강연균 화백처럼 흙과 민중의 고단한 삶을 연결하여 대자연을 더 크고 넓게 보도록 해주지는 못하지만, 이호중 화백은 그만의 끈기로 황토(또는 황토빛이나 황토의 질감)라는 소재에서 우리가 잃어버렸지만 다시 찾고 싶어 하는 그 무엇인가를 찾아냅니다. 그것은 따뜻하고 평안한 세상의 모습입니다. 도시의 경쟁 속에 지친 현대인들의 무의식이 요구하는 바로 그것이지요.
2005년 갤러리 도올에서 열린 ‘이호중 전 : 안개와 황토 풍경’에 전시되었던 <정미소 있는 풍경>(2005. 유화)은 이호중 화백의 황토화 중 백미라 할만한 작품입니다. 독특한 황토의 색감과 질감이 당장 눈에 들어오지만, 그것이 균형 잡힌 구도 안에서 조화롭게 구현되어 있는 점을 더 눈여겨 볼 필요가 있습니다.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기운 곡선의 경계에 따라 황토로 뒤덮인 아래쪽 화면은 그 바로 위쪽 화면부터 곡선과 직선, 황토색과 연한 녹색의 적절한 대비(일종의 보색효과)를 통하여 갖가지로 변주(變奏)하면서 논밭과 집, 나무 등의 풍경을 리듬감있게 만들면서 화면 상단을 향하여 넘실대듯 운동해갑니다. 짙은 색감과 마티에르 기법으로 화면 대부분을 답답해지기 일보 직전까지 황토의 색과 질감으로 채워가던 화가는 위쪽으로 수묵화같이 묽고 맑은 색감의 탁 트인 하늘 즉 여백을 통하여 작품 전체의 숨통을 열어 놓습니다. 그런데 하늘과 황토의 색감과 질감은 아래 위에서 바로 대비될 정도로 다르지만 두 색을 발원시킨 근본 자체는 서로 통하는 것처럼 느껴져 대비 속의 조화를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그 결과 황토의 이미지는 강하지만 은근하게, 밀도가 높지만 편안하게 감상자의 눈을 사로잡게 됩니다. 우리가 이 작품에서 극도의 평화로움과 안정감, 따뜻함을 느끼게 되는 것은 화가가 이처럼 위쪽과 아래쪽 화면을 대비되는 색감과 질감으로 단순하게 대비시키고 화면 중심에서 아래쪽의 색감과 질감을 자연스럽게 확장 변주하여 질서 있는 조화를 만들어낸 덕분입니다. 모든 것이 있어야 할 자리에 있는 듯 안정되게 배치되어 있어 누구에게나 편한 느낌을 주는 것이 이 작품의 큰 미덕입니다.
크기로는 24.2×41㎝의 소품이지만, 그 안에 작가의 모든 것이 담겨져 있는 ‘큰’ 작품입니다. 그런데 이 작품이 보여주는 한국 농촌의 풍경은 어딘가 모르게 이국적(異國的)입니다. 이호중 화백이 구사하는 색채는 우리에게 친숙한 황토의 색이고 풍경은 한국농촌입니다. 그런데도 이국적으로 느껴지는 것은, 기법이나 색감에서 오는 것도 있겠지만, 그보다는 이호중의 화면구성에서 기인하는 것같습니다. 여행을 하면서 금방 느끼는 것은 한국에는 정말 산이 많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정미소 있는 풍경>에서는 아예 산이 보이지 않습니다(아래 <두승산이 보이는 풍경>과 비교하여 보십시오). 농촌의 들녘은 넉넉하게 넓고 무한정 뻗어가는 것같습니다. 하늘을 제외하면 황토빛이 지배하는 풍경은 보이지 않는 공간까지 무한정 펼쳐져 있을 것 같습니다. 이 그림에는 산이 들어설 자리가 없습니다. 오른쪽 중앙 상단에 살짝 솟아오른 곳에 건물과 나무들이 배치되어 있을 뿐인데(이것은 화면 아랫 부분의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완만하게 미끄러져 내려가면서 화면 전체의 1/3이 약간 안되는 큰 부분을 장악하고 있는 황토에 대칭되어 그림 안에 적절한 리듬감을 줍니다), 이 부분을 제외하면 우리가 한국 농촌에서 볼 수 있는 산, 숲과 같은 것들은 전혀 보이지 않습니다. 심지어 이 부분 건물은 외국 농촌의 집 같아 보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정미소 있는 풍경>을 보다 보면 마치 유럽의 넓은 들판을 그린 전원풍경화인 듯한 착각에 사로잡히게 됩니다. 이처럼 우리에게 익숙한 소재를 가지고 화가는 자신의 관념이 창출한 다른 세상을 만들어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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