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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 : 빛과 색으로 치유하기

미술 이야기

by 최용성 2007. 7. 31. 17: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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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가 남한강 주변에서 본 듯한 풍경을 안정된 구도 안에 잡아내는 김동철 화백의 작품은 누구라도 금방 느낄 정도로 아주 편안한 기운을 뿜어냅니다. 그의 그림은 오염된 환경 속에서 지치고 혼탁해진 눈을 한없이 편하고 맑게 해줍니다. 그의 그림이 조성하는 따뜻하고 평화로운 안정감은 세파에 지쳐 경직된 사람들의 심신을 한없이 이완하고 치유합니다. 불안하거나 거친 느낌은 전혀 없고 어딘지 모르게 친숙하고 편한 느낌이 드는 것은 그려진 대상이 우리에게 낯익은 풍경 때문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작가의 표현 방법이 인상주의의 전형과 비슷하게 보이기에 생겨난 기시감(旣視感)에서 비롯되었을 겁니다. 그의 작품이 대중의 공감을 쉽게 불러일으키는 또 다른 요인은 그의 그림이 어떤 공간에서든 쉽게 어울리고 스며든다는 점에도 있을 겁니다. 이것은 생활 속에서 미술을 즐기는 사람들에게는, 경우에 따라서는, 작품 자체의 미학적 가치보다 더 중요한 것일 수도 있습니다. 이처럼 편하고 익숙하여 이해하기 쉽고 주위 환경과도 잘 어울리는 그의 작품이 나이와 성별을 가리지 않고 많은 사람들의 사랑과 지지를 받는 것은 당연합니다.   

  

   반면 그의 그림들은 피상적으로 접근하면 강력한 자기 주장이나 깊이가 부족한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그의 그림이 외관상으로는 누구라도 너무 쉽게 이해할 정도로 단순해 보이기 때문일 겁니다. 누구나 좋아할만한 작품에는 열혈 지지층이 없기 쉽습니다. 그림 좀 본다고 하는 사람들은 심오한 도전을 요구하지 않는 작품을 평가절하하는 습성에 빠져 있기 십상입니다. 그러나 진실은 쉽고 편하게 볼 수 있는 그림을 그리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 그러니 김동철 화백의 작품에서 작가의 치열한 창작성신이 어떻게 가장 편하고 쉬운 결과를 가져오는지 살펴보는 것은 뜻밖에 흥미있는 일일 수 있습니다. 이 글에서는 다소 추상적으로만 말해볼까요.       

 

   우리는 자연이 별 다른 변화 없이 늘 그 자리에 있는 듯 느낍니다. 자연은 때로는 우리의 상처를 위로하고 치유하지만 어떤 때에는 생존을 위협할 정도로 비인간적인 것인데도 우리는 자연을 고정된 근본, 상수(常數)처럼 바라봅니다. 자연 안에 우리가 이해하지 못한 불가사의함, 무궁무진한 신비, 새로운 변화가 가득 차 있음을 놓치면서 말이지요. 비유하자면 김동철 화백의 ‘자연’ 연작은 제목이 암시하는 바와 같이 사람들에게 쉽게 공유되는 자연의 그런 한 모습을 빼 닮았습니다. 

 

   작가는 대상이나 현상을 볼 때 의사가 인체를 보는 시각(진단과 치유)과 유사한 점을 발견한다고 말합니다. 시각적 휴식에 관심을 가진 작가는 시각매체들이 만들어내는 과도한 자극에 대한 치유의 목적으로 다양한 실험을 통하여 가능성을 현실화하여 가는데, “이때 어디서 본 듯한 익숙한 구도를 자주 사용하며 이는 관람자와의 거리를 좁히려는 의도적인 표현”이라는 것입니다. 결국 김동철 화백은 대중과 거리를 두고 작가만이 주인행세를 하는 현대미술의 일정한 조류와는 다른 길을 택하고 있는 셈입니다. 우리들이 편하게 감상할 수 있도록 해주기에 언뜻 쉬워 보이는 이 길이야말로 실은 작가에게는 많은 고뇌를 요구하는 좁고 험난한 길일 수도 있는 것.

 

   김동철 화백이 바라보는 자연의 본질은 어우러짐과 따뜻함, 안정감과 평화, 그리고 경계가 허물어져 막힘없는 세상입니다. 물론 이것은 자연의 한 면만을 본다는 점에서 한편으로는 왜곡된 것이지만, 그것이 우리가 희구하는 자연의 이상이기에 공감할 수밖에 없는 왜곡이라고 할 것입니다. 김동철 화백은 그 따뜻하고 평화를 주는 자연세계를 구성하는 가장 본질적이고 순수한 요소 즉 정수를 빛과 색이라고 생각하는 듯합니다. 그의 그림 속에서 자연의 소재들은 순수한 빛과 색 그 자체로 환원되어 갑니다. 실재(實在)의 이미지인 빛과 색이 아니라 화가의 관념이 만들어낸 빛과 색이 다른 이미지에 앞섭니다. 모든 회화가 화가의 관념세계를 거쳐간 빛과 색을 다루지만, 김동철 화백은 빛과 색으로 존재 사이의 경계를 해체하는 경지로 가는 듯합니다.

 

   그의 작품은 편하고 조화로운 기운을 발산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대상인 존재 사이의 경계가 더 급진적으로 해체되면서 빛과 색의 순수성이 이미지를 다르되 같게, 같되 다르게 통합하고 융화하는 데에서 비롯됩니다. 이전부터 그의 풍경화에서는 대상의 윤곽이 잘 드러나지 않았지만, 최근에는 그 윤곽 자체가 아예 사라져가는 듯한 작품들이 많아지는 듯합니다. 물론 윤곽이 뚜렷하게 표현된 작품들도 여전히 존재하기에, 이런 식으로 그림을 읽는 것은 “안개 낀 풍경을 그렸더니 윤곽이 없다고 말한다”라는 식의 제멋대로 감상법일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림 속에 표현된 경계나 윤곽이 남아 있느냐 없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경계가 해체되어 융합되어 다르되 다르지 않은 존재의 비밀을 작가의 그림에서 읽을 수 있다는 점이 중요하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물과 물풀, 숲, 그 너머 산, 하늘, 빛과 안개, 바다와 하늘 등등의 소재들은 그의 그림 속에서는 홀로 존재하는 법이 없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그가 표현하는 대상이 개별적으로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경계를 넘어 함께 어우러지는 흐름 혹은 과정을 표현한 그의 그림 속에서 개별 존재는 빛과 색의 프리즘을 거쳐 더 큰 세상, 즉 자연이 되어 우리 마음에 다가오는 것입니다.  

 

   김동철 화백이 작품의 제목을 “자연”이라는 흔한 단어로 삼은 이유도 그가 자연이라는 말 그대로 본질을 추구하는 화가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에게 자연은 선이나 형체, 질감에 그치지 않고 순수한 빛과 색 그 자체로 환원되어 경계를 넘나들 수 있는 세계이고, 이 세계는 사람들을 치유할 힘을 가진 세계인 것입니다어떤 그림이든-색과 크기를 왜곡하는-사진보다는 원화로 보아야 그 진가가 더 잘 살아나지만, 김동철 화백의 그림은  그 편차가 특히 더 큽니다). 

 

   경계를 해체하여 사물의 본질인 자연은 결국 빛과 색의 순수본질로 환원된다는 것, 빛과 색은 다채롭되 분리될 수 없이 통합된 것임을 일깨워주는 그의 그림이 일상에 지친 현대인들의 마음 속 상처를 치유하는 힘을 갖는 것은 당연한 일이겠지요. 이처럼 경계나 분별심 없이 자연의 본질에 접근하기 때문에 그의 작품은 인문학적인 사유보다는 순수한 감성으로 접근할 때 더 많은 것을 우리에게 보여줍니다. 시각적 아름다움의 처음과 끝이라 할 빛과 색의 원형으로 다가가면서 우리의 마음이 맑아지고 우리의 눈이 편해진다고, 그래서 결국 우리의 아픔과 고통이 치유된다고 작가는 믿는 듯합니다. “나의 그림으로 시각의 휴식과 평화 그리고 풍요를 주고 싶다”라는 화가의 순수한 마음이 세상살이에 지친 대중들이 그림으로부터 바라는 세속적 욕망을 외면하지 않음으로써 대중성을 확보하면서도 경계가 해체되는듯한 독창적인 세계를 열어보였다는 점에서 김동철 화백은 진정 행복한 화가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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