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하여야 그림을 제대로 볼 수 있을까요? 우리는 모든 것이 과잉인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미술 분야도 너무 많은 유파와 아류들이 범람하다보니 혼란스러울 지경입니다. 작품이 너무 많고 그에 관한 정보도 넘칩니다. 온갖 유형의 그림이 돌아다니는 세상이다 보니 내가 그림을 제대로 보는 것인지 확신이 들지 않을 때가 많습니다. 그래서 남의 눈치를 살피고, 전문가의 평가는 어떤지 곁눈질을 하게 됩니다. 혹은 대담하게도 자신의 미적 감수성만을 믿고 작품을 판단하려는 객기를 부리기도 합니다. 그러나 모든 평가와 판단에 마지막으로 깔려 있는 주관성이나 취향을 인정하고 존중한다고 하더라도 작품을 제대로 보려면 어느 정도 검증된 감상방법을 공부할 필요는 있다고 생각합니다. 2차원인 평면에 화가가 점과 선, 색으로 화가의 정신을 표현해내는 과정은 진공이 아니라 유구한 세월 동안 역사와 사회 속에서 이루어진 것입니다. 따라서 역사적으로 변용(예술에는 진화나 발전이 없다는 전제를 놓고 보자면 이 단어가 정확할 것입니다. 그러나 일정한 진화나 발전은 분명히 있었다고 보는 것이 더 사실에 부합할 듯합니다)되어온 화가들의 관념과 표현형식, 그것을 오랜 세월 동안 개념화하고 이론화한 결과를 먼저 살펴보는 것이 그림을 제대로 보기 위한 최소한의 출발점일 겁니다. 결국 기본으로 돌아가야 하지 않겠습니까.
대만 사람 구어슈쉬앤(郭書瑄)이 쓴 <그림을 보는 52가지 방법> (김현정 옮김. 예경, 2006, 181쪽)은 요령있게 잘 만든 미술 감상 입문서입니다. 우리가 그림을 이해하기 위하여 알아야 할 가장 기초적인 개념들을 짝수 면에서는 글로 쉽고 간결하게 설명하고, 홀수 면에서는 관련된 그림으로 이해할 수 있게 해주고 있어 사전 지식이 없는 독자라도 거부감 없이 책장을 넘길 수 있습니다. 형식분석에서 내용해석으로 나아가면서 살짝 미술사 지식을 곁들이고 있는데도 모두 181쪽에 불과하니 읽기에 부담이 없습니다. 그 간결함 속에서 그림의 기본개념을 거의 망라하여 이해시켜 주니 참 친절한 교과서인 셈이지만 아쉬운 점도 있습니다. 우선 이 책에서 미술작품을 심오하고 독창적으로 볼 수 있게 해주는 관점을 찾기는 어렵습니다. 다소 건조하고 관례적인 표현으로 일관하는 서술방식도 이러한 결과에 한몫한 듯합니다. 논쟁이 될 만한 현대회화들보다는 주로 고전회화들을 예시하며 그림의 기초 개념을 풀어주는 것도 독자의 회화적 상상력을 키우는 데에는 한계가 있는 방법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마지막 문제는 모든 미술입문서가 갖는 숙명 같은 것이니 너무 탓할 수야 없겠지요.
책의 제목에서는 ‘그림을 보는 52가지 방법’이라고 말하고 있지만, 정확하게는 52개의 항목 모두가 그림보는 방법은 아닙니다. 그러나 이 52개의 범주들이 여러 가지로 조합되어 함께 작용하기 때문에 넓게는 그림 보는 방법으로 묶어도 괜찮습니다. 저자는 크게 8가지 범주로 이들을 묶고 있습니다. 인용하자면, 그림은 점에서 시작한다, 무엇으로 그리는가, 어떻게 배치하는가, 공간에 주목하라, 어떻게 표현하는가, 무엇을 그리는가, 화가들은 신화를 좋아한다, 그림을 보는 또 다른 시선들.
이런 종류의 책을 읽을 때에는 항상 경계하여야 할 점이 있습니다. 여기서 개념화된 내용을 절대적 기준으로 맹신하여서는 안 된다는 것이지요. 예를 들어 책에서 설명된 균형이나 대칭, 비례를 이해하고 나서 그것을 기계적으로 적용하여 그림을 보는 식이어서는 안 된다는 말입니다. 감수자인 쩡샤오치앤(曾少千)과 저자의 다음 말을 경구로 삼고 출발한다면 쉽사리 함정에 빠지지는 않을 것입니다.
“예술 창작과 예술을 체험하는 방식은 나날이 발전하고는 있지만 예술의 수수께끼는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예술의 힘은 인성을 발전시키고, 또한 그것은 역사 안에서 이루어졌으면서도 역사를 초월하는 것이다. 그래서 감상자는 예술을 사랑하고 거기에 빠져들어야 하지만 동시에 이성적이고 진지한 태도도 잃지 말아야 한다”(쩡샤오치앤)
"작품의 의미는 사실 화가의 인생 변천이나 다른 작품들과의 상호 영향, 그 밖의 여러 다른 측면에서의 역사적 맥락 등과 함께 때때로 변화할 수 있다. 또한 독자의 관심과 사색 안에서 작품의 의미는 더욱 무한히 확대되고 변화될 수도 있는 것이다"(구어슈쉬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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