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미클로시 로자 탄생 100주년입니다. 이를 기념하여 유럽과 미국에서 그의 작품들이 연주되거나 녹음되고 있습니다. 연주회야 현실적으로 참석하기 어려울 테니 음반만 살펴보기로 합니다. 가장 두드러진 신보는 영화음악 분야에서 나왔습니다. 미클로시 로자의 바이올린 협주곡에 기초한 <셜록 홈즈의 사생활> 새 녹음은 뛰어난 해석과 연주, 음향으로 전폭적인 지지를 받고 있습니다. 제작자인 제임스 피츠패트릭의 원래 의도는 영화음악과 바이올린 협주곡 원곡을 나란히 1장의 음반에 커플링하는 것이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예상 외로 영화음악의 분량만으로도 CD 한 장을 꽉 채울 수 있게 되자 계획은 바뀌었지요.장수를 늘려서 바이올린 협주곡을 넣었으면 더 의미 있는 기획이 되었을 것 같긴 합니다.
반면, <스펠바운드> 새 녹음은 그 성과를 놓고 찬반 양론에 휩싸여 있습니다. 아마 지휘자 윌슨이 다소 느슨하게 긴장감을 풀고-긴장감없는 로자 음악이라니!-서정적인 해석을 시도한 것이 반감을 사는 것같습니다. 음향 면에서도 슬로박 라디오 심포니의 다른 연주보다는 훨씬 선명해지기는 하였지만, 소리가 펼쳐지는 공간이 다소 억눌려지는듯한 느낌은 여전히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볼륨을 높여 반복청취하면서 사운드트랙에 대한 기억으로부터 벗어나 귀를 적응시키면 꽤 설득력 있게 표현된 서정적 아름다움을 즐길 수 있습니다.
재발매 음반 중에서는 데카에서 70년대에 나온 <벤허>와 <쿼바디스>의 자작자연 LP를 2장당 1장 가격으로 리마스터링한 신보 앨범을 적극 추천합니다. 영국의 일급 오케스트라와 합창단, 프로듀서,엔지니어,레이블이 투입되어 이룩한 이 두 장의 음반은 찬란히 빛날 명반들입니다. 이들 앨범은 1980년대에 CD로 발매되었다가 오랫 동안 절판되어 있었던 희귀 아이템입니다. 각 12곡으로 구성되어 있고, 악곡의 수록순서나 구성이 순수 감상용을 전제로 재편되어 있어 순수음악적인 충실성은 사운드트랙을 앞선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해석과 연주도 그만큼 세련되고 정교하며 섬세하지만, 기백이나 추진력을 전면에 내세우지는 않았기에 이 대목에서 호불호가 갈릴 여지는 있습니다. 둘 다 좋은 연주이지만, 나중에 로열 필하모닉과 녹음한 <쿼바디스>가 더 호흡이 잘 맞는 원숙한 연주입니다. 녹음은 이 시대 데카 레이블이 보여준 높은 수준이 구현되어 있습니다. 다만 페이즈 4 스테레오라는 데카 음원의 원래 장점을 살리려면 SACD로 발매되었어야 할 터인데, 그렇지 못해 유감입니다
미클로시 로자의 마지막 성서사극 음악 <소돔과 고모라>는 많은 문제를 안고 있는 영화와 함께 과소평가되는 경향이 있지만, 실은 앞의 서사극 음악들에 뒤지지 않는 걸작입니다. 1980년대 이탈리아에서 나온 2장의 LP에 수록된 음원을, 보너스트랙을 붙여, 처음으로 2장의 CD로 묶었습니다. 상당히 좋은 기획인데 고역으로 치우친 듯한 리마스터링 음향은 1장으로 발매된 RCA 음반에 아쉽게도 한참 못미칩니다. 그러나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빼어난 음악의 전곡(다만 전주곡은 중간에 잘려 나갔음)을 당분간 제대로 들을 수 있는 장점은 포기할 수 없다고 보아야겠지요.
바레즈 사라방드 레이블에서 나온 100주년 기념앨범(3CDs)은 그 동안 이 레이블에서 재발매되지 않았던 음원들을 중심으로 이것저것 모아 놓은 옴니버스 음반입니다. 로자의 80세 생일을 기념하여 엘머 번스타인이 뉘른베르크 심포니를 지휘한 로자 영화음악 컬렉션인 '헐리웃의 전설' (콜로세움) 수록곡 전부가 다시 실려 있습니다. 빌리 와일더의 영화 <페도라>의 일부를 들을 수 있고, 1980년대에 녹음되었지만 오래전 절판된 피아노 듀오를 위한 뉴잉글랜드 협주곡과 스펠바운드 협주곡, '바늘구멍' 일부 등등 기존에 발매되었지만 현재 구하기 어려운 음원이 실려 있어 나름 좋습니다. 그러나 로자 음반사(史)에서 연주 기량 면에서 최악의 음반이라 할 리하르트 뮐러-람페르츠 지휘/ 함부르크 콘서트 오케스트라 연주의 '엘시드/벤허/왕중왕' 녹음이 모두 수록된 것은 제작자의 안목을 의심하게 하는 대목이라 할 것입니다. 차라리 '페도라'와 '바늘구멍' 앨범을 모두 수록하였다면 좋았을 것입니다.
연주회 음악의 신보로는 낙소스 레이블에서 바이올린 협주곡/신포니아 콘체르탄테를 수록한 앨범과 바이올린 독주곡집 앨범이 올 가을 발매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기타 상세한 정보는 http://www.miklosrozsa.org/ 를 방문하여 보세요
미클로시 로자의 자서전 <이중인생>이 절판되어 안타깝지만, 그래도 100주년에 걸맞는 책이 하나 나와 다행입니다. 전기는 아니고, 제프리 데인이 작곡가와 주고받은 편지나 기억들을 모아 놓은 개인적인 기록물입니다.
오늘은 미클로시 로자가 서거한 지 12년째 되는 날입니다. 우리 시대에 드물게 음악으로 영적인 감동과 흥분을 불러 일으켰고, 장르를 가리지 않고 최고의 음악을 작곡하였던 "사계절의 작곡가" 즉 “전천후 작곡가” (A Composer for All Seasons) 미클로시 로자 선생을 추모하여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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