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미클로시 로자의 탄생 100주년이 되는 해여서 몇몇 신보들이 출반되었습니다. 낙소스 레이블에서도 올해 9월에 2종의 음반이 나왔고, 우리 나라에서도 수입-판매되고 있습니다.
바이올리니스트 필리페 퀸트(Philippe Quint)와 피아니스트 윌리엄 울프램이 협연한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위한 음악’에는 로자의 바이올린 독주곡 4곡이 모두 담겨져 있습니다. 이 중 가장 규모가 크고 완성도가 높으며 연주시간이 긴 곡은 1986년 작곡된 무반주 바이올린 소나타이니 음반의 큰 제목이 정확하지는 않은 셈이지요. 윌리엄 슈먼의 바이올린 협주곡 음반으로 평론가들의 찬사를 받은 필리페 퀸트의 기교는 최정상급입니다. 그는 정교하고 안정된 음색과 찬란한 기교로 로자의 난곡들을 자유자재로 다룹니다. 하이페츠가 녹음했더라면 비슷한 접근을 하지 않았을까 여겨질 정도로 거침없이 그러나 제대로 통제하면서 질주하는 그의 연주는 음악의 핵심에 직설적이면서도 창의적으로 파고 들어갑니다. 대체로 템포가 빠른 편입니다. 이들 4곡을 모두 모은 음반으로는 이사벨라 리피(Isabella Lippi)가 존 노바첵과 연주한 코흐의 1994년 녹음 음반이 있었습니다. 당시 작곡가로부터 “이례적인 연주이다. 그녀의 예술감각, 연주의 명료함과 지적인 해석은 아마 내가 기대할 수 있는 모든 것이리라”라고 극찬을 받았던 리피의 연주와 비교하면 퀸트의 연주는 어떨까요. 작곡가가 생존해 계셨더라면 "더 기대할 것이 아직 남아 있었다"라고 말하지 않았을까요? 이사벨라 리피도 열심히 잘 연주했지만, 퀸트와 비교하면 조금 고지식하다고 할까, 아니면 조심스럽다고 할까, 그런 측면이 보입니다.
반면에 퀸트는 곡을 완전히 자기 것으로 소화하여 로자 음악의 질주와 멈춤 등과 같은 극적 대비의 미학을 풍부한 상상력에 터잡아 정말 잘 구현해냅니다. 그것도 아주 세련되고 아름답게. 헝가리 농민요의 흔적이 강하게 남아 있는 초기 작품들도 연주와 해석의 밀도가 높아져 '촌스럽게' 들리지 않습니다. 결과적으로 더 진한 헝가리 농촌의 색깔을 기대하는 사람들에게는 이 점이 아쉬울 수도 있겠지만, 저는 퀸트의 코스모폴리탄 식 접근에 호감이 갑니다. 특히 듀오와 무반주 소나타에서는 퀸트의 매력이 더 극대화됩니다. 최대의 난곡인 걸작 무반주 소나타에서는 윌리엄 스텍(William Steck)의 진중하고 깊이 있는 해석(GASPARO GSCD-265)이 최상의 선택으로 남겠지만, 젊은 혈기를 맘껏 발산하는 퀸트의 바이올린이 보여주는 매력도 그에 못지 않습니다(특히 첫째 악장만 비교하여 보면 스텍이 8분 13초인 반면, 퀸트는 6분 55초입니다). 더블 스토핑과 트리플 스토핑을 진부하지 않고 창의적으로 구현해내는 퀸트의 실력에는 감탄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지금까지 나온 퀸트의 낙소스 음반들 중 실망스러운 것은 없었습니다. 이번 로자 신보는 정말 훌륭한 성과입니다. 강력하게 추천합니다. 정말 기대되는 유망주가 아닐 수 없습니다. 퀸트가 언젠가 로자의 바이올린 협주곡과 신포니아 콘체르탄테에도 도전하기를 바랍니다.
바이올린 협주곡/신포니아 콘체르탄테 음반은 낙소스 사이트의 베스트셀러 차트에도 올라 있습니다. 하이페츠를 위하여 작곡된 바이올린 협주곡, 작품 24는 변화무쌍한 정서의 폭을 담고 있습니다. 20세기 최고의 바이올리니스트를 위하여 작곡된 곡이니만큼 엄청난 초인적 기교를 요구하기도 하지요. 멜랑콜리와 그리움, 격정과 같은 정서를 분출하면서도 고전적 균형을 달성해낸 이 곡의 음반목록은 무려 40년 가까이 하이페츠가 독점하여 왔습니다. 거침없이 질주하는 하이페츠의 아성에 처음 도전장을 던진 이는 이고르 그루프만(Igor Gruppman)이었습니다. 그의 느리고 조심스러운 접근은 나름대로 장점이 많았지만 너무 소극적이고 긴장감이 결여되어 있었던 게 문제였습니다. 로자 음악의 낭만적 열정이 부족했으니까요. 세다리스와 뉴질랜드 심포니의 조심스럽고 소극적인 협연과 코흐의 먹먹한 음향도 이런 인상을 만드는 데에 크게 한몫했지요. 몽환적이고 차분한 아름다움이 있었지만 만족스러울만한 결과였다고 말하기는 어려웠지요.
두 번째 도전을 한 사람은 로버트 맥더피(Robert McDuffie)였습니다. 정교한 오케스트라 음향을 만들어내는 요엘 레비(Yoel Levi)와 애틀란타 심포니 오케스트라, 텔락의 풍성한 엔지니어링이 가세한 이 음반(Telarc CD-80518)은 비평과 대중성 양면에서 보기 드문 성공을 거둡니다. 맥더피는 정확한 어택과 윤기있고 찰진 소리로 하이페츠의 음반에서는 질주 속에 묻혀 있는 듯 했던 이 곡의 다채로운 정서를 조금 더 드러내는 데에 성공합니다. 특히 레비와 애틀란타 군단의 정교한 뒷받침은 하이페츠의 것을 포함하여 지금까지 나온 어느 녹음보다도 독주와 관현악 사이에 훌륭한 균형을 이루어냅니다. 하이페츠는 여전히 불멸의 정상을 차지하고 있지만, 맥더피와 레비는 하이페츠의 세계와는 다른 길을 찾아내 하나의 절정을 이룬 것이지요.
아나스타시아 키트루크는 어디쯤 있을까요? 맥더피와 그루프만의 중간쯤일 듯. 그녀의 바이올린은 그루프만의 창백하고 건조한 톤에 비교하면 감성이 풍부한 낭만적 향취를 만들어냅니다. 그러다가 긴장이 결여되어 늘어지는 단점도 없습니다. 키트루크는 곡의 감정에 흠뻑 빠져들다가 지나치기 전에 다시 돌아오는 듯합니다. 이것이 멜랑콜리를 불러 일으키는 데에는 효과적이기도 하지만, 반면 어떤 때는 자신감이 결여된 듯한 느낌도 줍니다. 야블론스키가 지휘한 러시안 필하모닉은 복잡한 관현악 부분을 그런대로 잘 그려내고 있는 편입니다. 특히 둘째 악장에서 이들 콤비가 들려주는 서정성은, 장엄한 아름다움은 없지만, 나름대로 빛을 발합니다. 낙소스의 신보는 감성의 충만함에서 다른 어느 연주에도 뒤지지 않지만, 정확한 어택과 흔들리지 않는 테크닉, 에너지, 앙상블의 조화라는 차원에서 맥더피/레비의 성과에는 미치지 못합니다. 이런 인상에는 녹음도 한 몫 합니다. 낙소스의 녹음은 선명하기는 하지만 상대적으로 관현악의 저역이 약간 빈약하게 들려 텔락의 풍성하고 명징한 음향을 따라 잡지는 못합니다. 그러나 아직 음반의 절대수가 부족한 로자의 바이올린 협주곡에서 키트루크와 야블론스키의 음반이 주는 장점도 많습니다. 맥더피와 레비의 음반과는 다른 부분들을 강조하여 곡을 재미있게 들을 수 있도록 해줍니다. 맥더피처럼 마지막 악장의 엔딩을 하이페츠 버전과 다르게 선택한 것도 아주 좋습니다.
함께 수록된 바이올린과 첼로, 관현악을 위한 신포니아 콘체르탄테, 작품 29는 음반이 여럿 나와 있는데, 모두 다 나름대로 잘된 연주들이어서 낙소스의 신보가 그 음반들의 수준을 뛰어넘는다고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러나 키트루크와 체크마조프는 열심히 연주하고 있고, 오케스트라의 뒷받침도 최고 수준은 아니지만 꽤 훌륭합니다. 곡에 대한 두 연주자의 접근은 대결보다는 친화를 택하고 있습니다. 이 점도 장점으로 작용하기도 합니다. 몇 가지 아쉬움을 말했지만, 이 음반은 아직 많은 이들에게 알려져 있지 않은 로자의 걸작 협주곡 2곡을 진지하고 열성적인 감성으로 연주한 좋은 염가음반입니다.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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