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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에 올라간 코끼리

책 이야기

by 최용성 2007. 8. 2. 1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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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무래도 헨드릭 빌렘 반 룬(Hendrik Willem van Loon. 1882~1944)은 르네상스 맨인 것같다. 기자로도 활약하였다고 하지만, 어찌 이리도 관심 분야가 다양하고 재능이 많을 수 있는가. 서해문집이 펴내는 ‘반 룬 전집’ 중에 <코끼리에 관한 짧은 우화>(2005. 원제는 An Elephant up a Tree. 김흥숙 옮김)가 있다. 제목 그대로 동화책이다. 반 룬이 동화책 작가가 된 것도 놀랍지만 평소 저작에서 보여준 그의 신랄한 유머와 풍자를 생각하면 있을 법한 일이라는 생각도 든다. 그러나  매 홀수 면마다 나오는 수많은 그림을 전부 반 룬이 그렸다는 대목에 이르면 경이감마저 들지 않을 수 없다.

 

 

   책의 내용을 단순히 요약하면, 동물의 굴레를 벗어버리고 훨씬 우월한 인간(백인)의 방식을 받아들일지 말지를 두고 논란에 휩싸인 동물세상을 대표하여 코끼리 존 경이 파리를 거쳐 뉴욕에 가서 답을 찾아온다는 이야기이다. 현명하게도 반 룬은 이야기를 한 코끼리의 인간세상 방문기로 만들지 않는다. 뉴욕에 도착한 존 경이 악당들에게 납치당하자 고대 그리스 철학자처럼 통 속에서 살아가는 디오게네스라는 고양이가 납치사실을 알리려고 존 경의 고향을 찾아 험난한 여정에 오르며 겪는 모험과, 누들이라는 이름을 가진 닥스훈트 종 개가 존 경을 구하기 위하여 벌이는 활약이 보태져 진부하지 않고 흥미진진한 이야기가 만들어진다.

 

   이런 우화를 통하여 작가가 주려는 교훈이야 크게 예상답안을 벗어나지는 않지만, 그래도 진실은 아무리 보잘것없어 보여도 진실인 법. 1933년 발표된 이 책에서 작가가 대공황의 고통에 시달리던 동시대 사람들에게 외친 그 목소리는 불행히도 아직까지 강력히 울린다. 먼저 코끼리 존 경이 제출한 최종 보고서의 마지막 대목을 들어보자. “우리 동물들은 우리의 백인 이웃들을 흉내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인간이 오래 전에 잊어버린 무언가를 우리들은 아직 알고 있다. 그건 진실하고 도리에 맞는 삶은 존재의 궁극적 실체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을 때만 실현가능하다는 것이다. 오늘날의 인간은 자연의 기본 질서에 순응하기를 거부한다. 그 결과 인간은 파멸하게 되어 있다.”(196쪽).

 

   그러나 반 룬이 궁극적으로 말하고자 하는 바는 인간의 파멸이 아닐 것이다. 그는 낙천적인 진보주의자이고 휴머니즘의 신봉자가 아니던가. 인본적 가치에 대한 확신과 그로부터 생겨나는 희망이야말로 그가 궁극적으로 우리에게 말하려던 바가 아니겠는가. 바로 책 표지에도 인용되어 있는 그 문구처럼.

 

우리의 세계에는 영원히 변치 않을 오래된 가치, 사랑, 관용을 지닌 것들이 이리도 많은데, 왜 결코 풀리지도 않을 그런 문제들에 대해 신경을 쓴다지? 아내에 대한 사랑과 존경, 친구와의 우정, 우리의 아이들이 훌륭한 후계자가 되도록 키우는 즐겁고 감사한 일, 태양이 먼 바다로부터 다시 떠오르는 이른 아침의 아름다움, 보람 있게 보낸 하루의 끝에서 어둠이 언덕과 골짜기에 내려앉을 때, 우리의 수많은 실수와 실패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존재의 영원한 실체에 충실했음을 느낄 때, 그때 우리를 찾아오는 만족감”(204쪽)

 

* 반룬에 대한 기사는 http://www.hani.co.kr/section-009100003/2005/01/009100003200501141625038.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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