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락한 음악(퇴폐음악)! 이것은 나치가 코른골트의 음악에 붙인 레테르였다. 그런데 나치가 몰락하자 이제는 영화음악을 작곡하였다는 이유로 그의 음악은 상업적으로 타락한 구식으로 간주되었다. 편견은 거듭하여 낙인을 만들어냈다. “금이라기보다는 옥수수”(more Corn than Gold)라는 어느 평론가의 독설 속에서 나치의 인종적 편견은 영화음악에 대한 미학적 편견으로 대치되었다. 코른골트는 잊혀졌다. 소수의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고작해야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아류’라거나 미성숙의 재능을 영화음악이라는 ‘싸구려’ 예술에 ‘팔아넘긴’ 작곡가라는 식의 왜곡된 인상만이 남았다. 그러나 기적이 일어났다. 아이러니하게도 코른골트 르네상스는 영화음악에서 시작되었다. 아들인 조지가 1972년 제작한 코른골트의 영화음악 음반이 베스트 셀러가 되면서부터 코른골트는 새로이 주목받았던 것이다. 이어 1980년대 후반부터 일어난 ‘타락한 음악’에 대한 관심은 데카의 시리즈 레코딩으로 이어졌고 코른골트 탄생 100주년인 1997년을 정점으로 그의 음악은 계속 연주-녹음되고 있다.
우리 나라에서는 1990년대 중반까지 그의 음반을 구경하기도 어려웠었다. 그런 상황에서『하이파이 저널 』10호가 대규모 특집으로 ‘잊혀진 천재 코른골트의 재발견’이라는 기획을 실은 것은 파격적인 일대 사건이었다(꼭 읽어보시기를 권한다). 그것이 코른골트 탄생 100주년을 2년 앞둔 1995년의 일이었다. 이를 계기로 코른골트의 음반이 본격적으로 수입되기 시작하였고 마침 데카의 ‘타락한 음악’ 시리즈와 DG, EMI, CPO, 샨도스 등의 음반이 소개되었다. 그러나 한국의 평론가들은 코른골트를 다시 무시하였다. 보수주의자들은 영화음악을 작곡한 대중적 작곡가의 음악이라면서 거리를 두었다. 코른골트 자신이 영화음악의 한 형식을 창조한 것임을 모르기에 생겨난 이 편견은 이미 구미에서는 극복된 오판이다. 반면 진보주의자들은 치열한 시대정신이나 예술가적 독창성은 찾기 어렵다는 식으로 비판을 퍼부어댔다. 예술가적 독창성이 없다? 단 몇 초만 들어도 코른골트임을 느끼게 하는 그의 음악에 독창성이 없다면 이 세상 누구의 음악이 독창적이란 말인가. 치열한 시대정신의 결여? 코른골트가 가지 않은 다른 길만이 치열한 시대정신을 가지고 있다는 이 놀라운 독단!
제발 이런 식의 편견을 버려주시기 바란다. 마음을 열고 다가가면 진정 숨은 보물이 기다리고 있다. 공기와 같은 자연스러운 가벼움, 샘 솟아오르는 듯한 탐미적 선율의 무한한 확장, 반음계와 전조로 만들어지는 넓은 표현력, 대담하지만 자연스러운 화성, 생기찬 리듬, 다채로운 음빛깔, 소박하고 솔직한 정서, 그리고 이 모든 것에 담겨져 있는 깊은 따뜻함―이 아름다운 세계를 달리 누구의 음악에서 들을 수 있겠는가.
에리히 볼프강 코른골트(Erich Wolfgang Korngold)는 음악사에서 유례가 없는 천재였다. 모차르트의 어린 시절 음악은 소년이 쓴 작품이라는 느낌이 들지만, 코른골트의 경우는 원숙한 성인의 작품과 다를 바가 없다. 1909년 리하르트 슈트라우스가 코른골트의 초기 작품을 두고 “이 확고한 스타일, 숙달된 형식, 소나타에서의 개성적인 표현력, 대담한 화성은 진정 놀랍다”라고 평한 것도 그 때문이다.
코른골트는 브랜던 캐롤(Brendan G. Carroll)이 25년 동안 심혈을 기울여 쓴 전기의 제목처럼 마지막 천재였다. 모더니즘 음악에서는 애당초 어린 천재 작곡가의 탄생을 기대할 수 없다. 수학적 엄밀성을 적용하여 치밀하게 음을 직조해가는 세계에 필요한 것은 훈련이지 즉흥적인 아름다움에 대한 직관이 아니기 때문이다.
코른골트가 태어난 시기는 후기 낭만주의의 절정기였다. 이미 조성 체계는 위태롭게 흔들리고 있었다. 조성은 중심음을 두는 체계이다. 중심음으로 회귀하려는 운동으로 인하여 소리의 높낮이에 질서가 부여되고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감성적으로 음악에 반응하게 된다. 코른골트는 조성음악의 전통을 받아들여 그 기초 위에서 자신의 개성을 추구하였다(그런 그의 음악을 가리켜 독창성이 없다고 말한다면, 지나친 단절적 사고가 아닐까. 구약성경 전도서의 말씀처럼 태양 아래 새 것은 없다는데, 아무리 구시대와 단절하고 싶었던 역사적 체험이 있었다고 하더라도 왜 모더니스트들은 강박적으로 새 것에만 그리도 매달렸을까).
코른골트에게 음악 창작은 자연의 한 과정이었고 조성은 자연 그 자체였다. “사과 나무에서 살구가 열리게 할 수는 없다”라는 말 속에 그의 정직한 예술관이 모두 담겨 있다. 코른골트는 무한한 멜로디와 화성의 조합이 창조자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는 조성체계라는 것이 결코 고갈되지 않을 세계라고 확신하였다. 그 안에서 얼마든지 개성적이고 창조적인 음악을 작곡할 수 있다는 코른골트의 믿음은 평생 동안 유지되었다(코른골트처럼 쇤베르크와 그의 추종자들이 걸었던 길을 명시적으로 거부한 미클로스 로자는 평생 동안 단 한 차례 12음 기법의 음악을 작곡하였는데, 바로 ‘왕중왕’에서 그리스도를 유혹하는 악마의 주제로 사용하였다).
불행히도 20세기를 주름잡은 모더니즘적 사고는 코른골트의 발전적 음악관을 용납하지 않았다. 음악사의 주류를 차지한 것은 후기 낭만주의의 길에서 벗어난 쇤베르크와 그 추종자들이었고, 그들이 만들어낸(!) 무조음악과 그 뒤를 이은 12음 기법 음악은 수학적인 엄밀성과 조작적 실험으로 후기 낭만주의 조성음악을 시대에 뒤떨어진 촌스러운 것처럼 보이게 만드는 데에 성공하였다. 그러나 그 댓가는 혹독하였다. 20세기의 클래식 작곡가들은 청중을 잃었다. 과거의 음악만이 연주되고 감상되는 관행이 자리잡으면서 동시대의 음악은 전문가의 음악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모더니즘 음악의 수호자들이 고군분투하면서 음악의 지평을 넓히려고 노력한 점은 평가해주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음의 논리적 아름다움에 감탄하고, 구성의 밀도에 집착하여 우리가 얻은 것은 무엇인가. 모두 솔직해지자. 실연이나 레코드를 들을 수 없을 때 마음 속에서 진정 우러나오는 음악이 무조/ 음렬 음악일 수 있을까. 우리 마음 속에서 살아 있는 음악은 그 장르가 무엇이든간에 결국 노래할 수 있는 음악, 조성음악이 아닌가. 이것이 진실이다. 조성은 너무 오랜 관습이어서 인간의 유전자에 각인되어 있는지도 모른다.
모더니즘 음악이 준 해악은 그 기법 자체에 있지 않다. 오직 그 방향의 창작만이 유일한 창조이고 치열한 시대정신의 반영이라는 독단이 문제였다. 표현 영역의 확장이라는 차원에서 접근하여야 할 문제를 패러다임의 180도 전환으로 받아들였던 당시의 시대정신이 잘못되었음은 1960년대부터 시작된 낭만주의의 부활과 조성음악의 영겁회귀로 반증되고 있다. 1926년 비인 사람들이 미래를 이끌어갈 음악가로 쇤베르크와 코른골트를 꼽았을 때 그들은 미래의 음악이 나아가야 할 두 가지 길을 무의식으로나마 느꼈을지도 모른다. 조성이든 무조이든, 낭만이든 아니든 인간의 존엄을 느끼게 해주는 아름다운 음악을 통하여 삶을 성찰하고 자아를 성숙시키면 충분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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