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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세상 사이에서 : 에리히 볼프강 코른골트 (세 번째)

Erich Korngold

by 최용성 2007. 8. 22. 1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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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ngold, Max Steiner, and Leo Forbstein head of music at Warner Bros., 1939

 

    영화음악을 시작한 1934년부터 코른골트는 콘서트 음악을 별로 쓰지 않았는데,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한 1939년부터 전쟁이 끝날 때까지는 아예 영화음악 외에는 달리 창작활동을 하지 않았다. ‘Juarez'(1939), 엘리저베스와 에섹스의 사생활(1939), ‘The Sea Hawk’(1940), ‘The Sea Wolf’(1941), ‘Kings Row’(1942), ‘The Constant Nymph’(1943), ‘두 세상 사이에서’(1944), ‘인간의 굴레’1945), ‘Escape Me Never’(1946), ‘기망’(1947)에 이르기까지, 수는 적지만 걸작의 반열에 드는 일급의 영화음악을 작곡하였다. 당시 함께 워너 브러더스에서 일했던 막스 슈타이너(Max Steiner.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작곡가)가 코른골트와 나눴다는 말은 널리 회자되고 있다.

 

   막스 : 에리히, 생각해보았는데요. 우리가 워너에서 일한지 10년이나 되었는데, 내 작품은 갈수록 좋아지고 당신 작품은 점점 나빠지네요.

  에리히 : 친애하는 막스, 왜 그런지 말해줄까. 나는 당신 것에서 훔치고 당신은 내 것에서 훔치기 때문이야.

 

    1945년 아버지 율리우스 코른골트가 세상을 떠났다. 아들이 영화음악을 작곡하는 것에 반대하고 심히 우려하던 아버지의 죽음은 코른골트 자신에게도 위기의식을 갖게 했을 것이다. 1946년 워너와의 계약을 갱신하지 않은 코른골트는 “다음달 5월이면 쉰살이다. 쉰이란 나이는 신동에게는 너무 많은 나이이다. 남은 생애를 리우드 작곡가로 남기를 원하지 않는다면 결단을 내려야한다”라고 말했다. 코른골트가 워너 브라더스 사를 떠나기 바로 전에 제작자 헨리 블랭크와 나눈 아래 대화는 코른골트의 유머 감각과 아울러 그가 영화라는 매체에 대하여 가진 심경의 변화를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블랭크: 에리히, 당신이 처음 우리에게 왔을 때는 흥미진진하고 쾌활하고 폭발적이던 당신 음악이 지금 와서는 처음 같지는 않아요.

  코른골트: 처음 이곳에 왔을 때는 대사를 이해 못했는데, 지금은 이해하게 되었거든요.

 

    코른골트는 아버지의 권유를 받아들여 영화음악의 주제를 모아 바이올린 협주곡을 작곡하였다. 이 아름다운 곡은 야샤 하이페츠에 의해 초연되어 지금은 표준 레퍼토리로 정착되고 있다.  

 

에리히 코른골트, 에마뉴엘 베이, 야샤 하이페츠

 

    코른골트는 1949년 비인에 돌아왔다. 1년 동안 그 곳에 머물면서 옛 명성과 활동 무대를 되찾고자 하였지만, 23년여 동안 단절된 시간을 돌릴 수는 없었다. 비인은 더 이상 코른골트를 위한 도시가 아니었다. 조성음악과 낭만주의의 전통이 사라진 ‘죽음의 도시’였다. 1950년 비인에서 막을 올린 ‘카트린’은 불과 6차례의 공연만에 막을 내려야 했다. 다시 올린 ‘죽음의 도시’도 실패하였다. 코른골트는 시대착오적인 구식 작곡가로 취급되었고, 나치에 의하여 찍힌 ‘타락한 음악가’라는 낙인이 이번에는 영화음악을 작곡하였다는 이유로 다시 부여되었다. 영화음악을 무조건 폄하하는 어리석은 평론가들과 음악인들, 부화뇌동하는 청중들이 대세를 차지하면서 코른골트는 음악사와는 무관한 인물인 것처럼 빠르게 잊혀지기 시작하였다.   

 

1954년 유렵으로 가는 항해길에서

 

    1952년 완성된 유일한 교향곡에 극도로 어두운 정서가 담긴 것은, 코른골트가 사랑하고 자신의 일부처럼 사랑하였던 도시로부터 버림받은 상실감, 자신의 재능이 완전히 개화하고 인정받지 못했다는 좌절감이 악상에 반영된 탓이리라. 그러나 이 비극적인 음악 속에서도 코른골트는 희망을 노래하였고 마지막 악장의 종결음은 그 어떤 음악보다 강하게 삶을 긍정하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1956년 겨울부터 뇌일혈로 고통을 받던 에리히 볼프강 코른골트는 1957년 11월 29일 세상을 떠났다. 그 다음날 비인 오페라 하우스는 애도의 전통에 따라 조기를 게양하였다. 그 소식을 들은 루이제는 조용히 말했다. “조금 늦었어”    루이제는 5년 정도를 더 살았지만, 불행히도 곧 다가올 코른골트 르네상스를 보지는 못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코른골트 르네상스는 영화음악에 대한 재평가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코른골트 음악의 매력은 탐미적인 관능성과 해맑은 순수함이 행복하게 결합된 가운데 깊게 울리는 인간적 따뜻함에 있을 것이다. 이 경이로운 따뜻함은 외형적 기법으로는 닮은 점이 있는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와 코른골트를 가르는 분수령이 될 것이다. 공기처럼 가볍고 단순한듯한 멜로디와 화성, 리듬 속에 숨은 무궁무진한 도취적 아름다움에 한 번 빠져들면 다른 대안이 없다. 코른골트는 미성숙의 신동이 아니라 삶의 마지막 순간까지 완벽한 천재였다. 그가 남긴 모든 작품 속에 그의 천재성은 완벽하게 구현되고 있다.

 

    영화음악사에서 코른골트가 차지하는 위치는 특이하다. 그가 작곡한 영화음악의 수는 많지 않다. 그러나 모든 작품에서 그는 ‘가사 없는 오페라’(opera without words)라는 원칙에 따라 작곡하였다. 배우들의 대사는 오페라의 가사처럼 음악과 완벽하게 통합되었다. 무엇보다 뛰어난 대목은 음악 전체의 구조적 통일이다. 영화를 제작하면서 음악의 구조적 완결성을 미리 염두에 두는 경우는 거의 없기 때문에 영화음악이 처음부터 끝까지 유기적 연결이라든가 구조적 일관성을 갖기란 쉽지 않다. 그러나 코른골트만은 예외이다. 그의 음악은 장면별로 파편화되지 않는다. 앞의 음악은 뒤의 음악에 자연스럽게 이어지고 발전하며 확장해간다. 이러한 구조적 통일은 소수의 뛰어난 영화음악에서만 발견되는 특징인데, 코른골트 외에 이러한 면모를 가장 잘 보인 작곡가로는 허만과 로자 정도만 떠오른다. 그러나 코른골트처럼 단 하나의 음표까지 완벽히 통합해낸 작곡가는 영화음악사에서 달리 찾기 어렵다.

 

베티 데이비스와 폴 헌레이드에게 영화 '기망'에 사용되는 첼로협주곡을 리허설하다

 

    우리 생애 최고의 해’로 아카데미상을 받은 영화음악의 거장 휴고 프리드호퍼(Hugo Friedhofer)가 “솔직히 말해 우리 모두는 코른골트로부터 영향받고 있다”라고 한 말은 정곡을 찌르고 있다. 코른골트의 영화음악 속에 이미 앞으로 발전해갈 장르의 모든 규칙과 예술성이 총괄되어 있었던 것이다. 지휘자 존 마우체리(John Mauceri)는 1930년대 후반에서 1940년대에 코른골트, 슈타이너 등의 후기 낭만주의 영화음악을 듣고 성장한 세대가 콘서트에 참여하기 시작한 60년대부터 말러 열풍이 불었다는 점을 예로 들면서 서양 클래식 음악의 전통이 영화음악을 통하여 계승-발전하고 있다는 흥미로운 가설을 내놓은 일이 있다. 영화음악이 공포를 묘사할 때에는 무조음악을 사용함으로써 그 청중까지 만들어 주었다는 조크도 덧붙여. 아닌게 아니라 우리가 처음 교향악, 특히 동시대 작곡가의 관현악곡을 접하는 장소는 연주회장이라기보다는 주로 영화관이 아닌가. 코른골트 르네상스가 영화음악 장르에서 시작된 것은 우연이 아니었던 것이다.

 

    코른골트는 ‘퇴폐음악’과 그렇지 않은 음악이라는 이분법적 낙인의 피해자가 되어 구대륙에서 신대륙으로 망명하였다. 그러나 이분법적 낙인은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콘서트 음악과 영화음악 사이를 넘나 들었다는 이유만으로 ‘순수’ 음악계에서는 ‘할리우드 작곡가’로 폄하되었다. 낭만주의와 모더니즘 사이에서 모더니즘을 선택하지 않았으니 시대착오라는 이유로 음악사에서 망각되기도 하였다. 자신이 가장 좋아하였다는 영화의 제목처럼 그는 ‘두 세상 사이에서’ 터무니없는 선택을 강요받으며 힘겹게 살았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음악에 변함없이 흐르는 깊은 따뜻함은 삶에 지친 우리들의 영혼을 위로하면서 진정한 예술의 힘이 무엇인지를 감동적으로 보여준다.

 

제시카 듀첸(Jessica Duchen)이 지은 코른골트의 또 다른 전기

 

  * 코른골트의 디스코그래피에는 좋은 연주와 녹음이 상당히 많다. 다음 기회에 음반들을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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