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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른골트: 바다매(The Sea Hawk)

Erich Korngold

by 최용성 2007. 10. 10. 16: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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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롤 플린 같은 멋쟁이 배우가 나오는 해양 모험활극 <바다매>(시 호크. The Sea Hawk. 개봉 당시 우리말 제목 아시는 분?)같은 영화에는 무엇보다 활기넘치고 색채적으로 화려한 음악이 필요합니다. 이런 영화를 위한 음악에 코른골트를 넘어서는 사람은 따로 없었을 것. 기대대로 코른골트는 그의 최고걸작이라 할 만한 음악을 만들어냈습니다. 이 영화음악은 마치 하나의 오페라처럼 주제들이 유기적으로 엮어져 진행되어 개별 곡들에 기묘한 통일감을 부여합니다. 적절하게 긴박감을 유발하면서도 사나이의 로망을 자극하듯이 군더더기없이 활기차게 비상하는 대목들은 일품이지요. 미녀와의 사랑을 담은 서정적인 주제는 코른골트의 전매특허이니 더 말할 필요도 없을 터. 게다가 적당한 유머감각까지 나타납니다. 요컨대 이 영화음악이 담아내는 세상은 퍽 다채롭고, 듣는 사람을 모험활극의 주인공처럼 멋지게 만듭니다(혹은 그런 착각을 불러일으킵니다).

 

    이처럼 처음 듣는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멋진 곡이었기에 1970년대 RCA에서 처음 나온 클래식 영화음악 시리즈의 첫 앨범 대표 제목으로 사용된 이후 이 영화음악의 전곡판에 대한 요구가 끊임없이 제기되었다고 하지요

 

 

    정작 첫 단독 앨범은 1980년대에 이르러서야 고() 코지안이 지휘하는 유타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녹음(Varese Sarabande)으로 나왔습니다. 40분대의 음반에 매우 밝고 화려한 연주가 담겨져 있었지요. 그 뒤에 우리는 드프라이스트/오레곤 심포니(델로스), 앙드레 프레빈/런던 심포니(DG) 등과 같은 음반을 통하여 짧은 모음곡의 형태로만 이 곡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드디어 올해가 되어서야 존 모건이 복원한 악보를, 윌리엄 스트롬버그가 모스크바 심포니 오케스트라를 지휘하여 녹음한 전곡음반이 낙소스 레이블에서 나왔습니다. 앨범의 첫 번째 장에는 78, 두 번째 장에는 36분이 넘는 <바다매> 음악이 실려 있으니 무려 114분이 넘는 대곡입니다. 두 번째 음반의 남은 부분에는 코른골트의 첼로협주곡이 포함된 영화 <기망>의 전곡음악이 수록되어 있으니 금상첨화입니다.

 

    존 모건, 스트롬버그, 모스크바 심포니는 낙소스의 자매 레이 블인 마르코폴로의 영화음악 클래식스 시리즈를 맡아 좋은 음반들을 내왔습니다. 낙소스 레이블로 옮겨오면서 음반 가격이 내린 덕분에 더 많은 사람들이 접근할 수 있게 된 건 좋은 일입니다. 다만 모스필름 스튜디오에서 녹음된 이 오케스트라의 연주는 제가 듣기에는 세계최고 수준도 아니고 간혹 굼뜬듯이 들릴 때가 있는 데다가 스튜디오 음향이 약간 먹먹하기도 하여 이번 신보소식에 불안한 마음도 있었습니다. 코른골트의 영화음악 중 가장 관현악법이 화려한 이 작품이야말로 세계최고의 오케스트라와 음향홀, 엔지니어가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결과는? 기대 이상의 좋은 연주와 녹음입니다. 모스크바 심포니의 소리는 화려하거나 색채적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현저히 세련되어졌고 연주의 질이 상당히 높아졌습니다.

 

    코지안의 유타 심포니와 비교하자면, 어느 쪽이 압도적인 우위를 차지한다고 말하기는 어려울 것같습니다. 스트롬버그의 음반은, 코지안 음반의 화려함은 줄어든 대신 무게감이 더해져 듣기에 좋습니다. 짧은 부분이기는 하지만 마리아의 노래를 부른 이리나 로미셰프스카야의 독창도 아주 훌륭합니다. 이 음반을 들어보면 코지안의 축약음반도 중요 주제를 잘 모아 놓기는 했지만, 역시 전곡음반의 다채로움과 여유로움에는 미치지 못하는 점이 있습니다. 물론 연주시간이 두 배를 훨씬 넘었다고 해서 코지안 판에서는 듣지 못하던 새로운 주제를 많이 들을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코른골트가 작곡한 모든 주제들이 충분히 발전하는 것을 음미할 기회가 생기는 듯합니다. 그리고 흐름이 무척 자연스럽습니다. 바쁠 때에는 하이라이트를 간추린 코지안 판을 들으면 될 터이니 두 음반은 보완관계로 보아야 할 겁니다.

 

    음악애호가들에게는 좋은 일이겠지만, 음반사들에게는 가혹하게도 하필이면, 올해 다른 경쟁음반도 나왔습니다. 1장에 <바다매>를 담은 루몬 감바 지휘, 비비시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샨도스 음반이 그것입니다. 감바는 교향악적 흐름을 위하여 전곡녹음보다는 1장의 음반에 축약하는 것이 더 타당하다고 주장하면서 앨범을 6개의 악장으로 구성된 모음곡으로 만들었다고 합니다. 영화음악 사운드트랙에는 어쩔 수 없이 파편적이거나 과도하게 반복되는 음악들이 생겨남을 감안할 때 감바 식의 접근이 제대로만 이루어진다면, 영화음악을 일반 교향악처럼 보편적 감상을 위한 구조적 통일성을 갖춘 음악으로 자리매김하는 데 크게 기여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물론 낙소스 음반처럼 모든 음표를 살려 놓는 시도도 그 자체로 가치가 적지 않겠지만, 감상음악의 차원에서는 불필요한 반복과 파편성을 덜어 내는 것이 좀 더 적절하다는 데에 저는 동의하는 편입니다. 다만 감바의 주장이 <바다매>의 경우에 옳게 구현되었는지 어쩐지는 샨도스 음반과 낙소스 음반을 자세히 비교하여 들어보아야 알 수 있겠지요.

 

 

    판정이 어떻게 나든 낙소스의 코른골트 음반은 그 자체로 아주 좋습니다. 더욱이 첼로협주곡이 들어 있는 <기망>은 유일한 전곡녹음인 데다가 연주도 훌륭하니 낙소스 음반의 가치는 확고하다고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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