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나라 사람들은 현악기에 강하다. 강효 교수가 한국인 현악주자들을 주축으로 하여 만든 세종 솔로이스츠의 연주 실력에서도 이 명제는 실증된다. 피아졸라, 빌라-로보스, 브라가토, 퐁셰, 본파의 라틴 음악에서 이들은 열정과 우수, 그리움의 세계를 생동감있으면서도 정교하게 그려내 보인다. 피아졸라의 탱고 음악은 몇몇 반복되는 음형으로 인하여 언뜻 들으면 그게 그거인 듯하지만, 그 안에 수많은 극적인 변화가 담겨져 있다. 비발디의 <사계>에서 재치있게 인용된 부분이 탱고와 절묘하게 연결되는 <부에노스 아이레스의 사계>에서 세종 솔로이스츠는 빈틈없는 앙상블 속에 미끄러짐이 난무하면서도 절도있게 진행되는 탱고의 속성을 잘 살려낸다.
빌라-로보스의 유명한 걸작 <브라질풍의 바흐> 제5번에서는 EMI에서 낸 독집 앨범으로 평단의 찬사를 받았던 소프라노 유현아가 독창을 맡아 아름다운 톤과 감성을 들려준다. 빅토리아 데 로스 앙헬레스, 스토코프스키의 탁월한 지휘와 결합된 안나 모포의 꽉 차고 풍성한 성질과 비교하자면 다소 여리지만 그 서정성은 높이 평가받을만 하다. 브라가토의 첼로와 현악을 위한 <그라시엘라와 부에노스 아이레스>는 질주와 정지, 뜨거움과 차가움, 다가서기와 멀어지기 등등과 같이 강렬하게 대비되는 특색을 짧은 시간 안에 배치하는 탱고 음악의 특색을 하나에 모아놓은 종합선물꾸러미 같은 곡이다. 첼로가 노래하는 귀에 달라붙는 선율과 극적인 변화가 어우러져 한 편의 드라마를 보는 듯한 느낌을 준다. 세종 솔로이스츠의 진가는 이런 난곡에서 빛을 발한다. 퐁셰의 <에스트렐리타>는 두말할 필요가 없는 무드 음악의 명곡. 라틴 무드 음악을 다루는 앨범에서 자주 수록되는 인기곡이다. 여기서는 바이올린 독주가 이끌어가는 하이페츠의 버전을 택하고 있다. 연주야 흠잡을 데가 없지만 조금 느리고 정교한 것이 불만아닌 불만이다. 아무래도 이런 인기곡은 만토바니 같은 통속적이고 감상적인 접근이 좀 더 재미있다. 바이올린 독주의 명인기는 이어지는 피아졸라의 <칸젠게>에서 맘껏 발휘된다.
이 앨범에서 가장 새롭고 흥미진진한 곡은 에밀리 디킨슨의 시를 노랫말로 하여 골리요프가 작곡한 <이토록 더딘 바람>이다. 신비한 짧은 현악 음형의 반복으로 개시되는 첫 부분에서부터 패르트, 칸첼리의 음향세계가 연상되는, 강렬한 매력을 지닌 곡이다. 이 말을 골리요프가 아류라는 의미로 오해하지 않으시길 바란다. 골리요프는 인간의 온갖 감정을 정화하여 순수형태로 제시하는 데에 탁월한 능력이 있는 독창적 작곡가인 것같다. 여기서 다시 등장하는 유현아는 디킨슨의 시어에 담긴 그리움과 덧없음을 절절하고도 아름답게 표현해낸다. 골리요프의 감성과 유현아의 목소리는 궁합이 잘 맞는 것같다. 골리요프의 음악을 더 들어보고 싶다. 본파의 <카니발의 아침>은 더 말할 필요도 없이 너무도 유명한 영화 <흑인 오르페>의 주제음악이다. 독주 바이올린과 비올라(리처드 용재 오닐)가 큰 활약을 하지만, 원곡의 매력을 뛰어넘는 독자적인 세계를 보여주는 데에는 실패한 편곡이다.
이 음반에 실린 음악과 연주는 흠잡을 데가 없이 훌륭하여 단연 특선감이다. 작품성과 대중성을 한 번에 잡아낸 기획의 승리라고 할만하다. 그러나 소리와 책자에 대하여는 잔소리를 좀 해야겠다. 녹음이 특별히 잘못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악기와 인성(人聲)의 울림이 조금 더 자연스러웠으면 하는 느낌이 든다. 악기의 소릿결도 조금 더 세심하고 부드럽게, 그리고 밀도높게 잡아낼 수 있었을 것같다. 그런데 이러한 음향 특성이 세종 솔로이스츠들 자신의 소리에서 연유한 것인지 아니면 음향 엔지니어링의 한계인지는 잘 모르겠다. 책자의 해설은 정준호 씨가 잘 번역했다. 번역이 서투른 두다멜의 신보들과는 대비되는 장점이다. 그런데 글자크기를 왜 그리 작게 만들어 놓았단 말인가. 안경을 쓰지 않는 내가 보기에도 불편할 정도이다. 연주자들보다는 음반제작사의 마무리 잘못으로 인하여 이 음반을 특선으로 세우지 못하여 유감이다.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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