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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다멜이 지휘하는 차이코프스키 교향곡 제5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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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용성 2009. 1. 13. 14: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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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차이코프스키가 작곡한 마지막 3개의 교향곡은 러시아 음악사는 물론이고 교향곡 역사에서도 아주 중요한 작품이다. 감상주의에 결부시켜 그의 업적을 폄하하려는 시각도 있지만, 차이코프스키는 이들 세 개의 교향곡을 통하여 어느 누구도 도달하지 못한 새로운 경지의 넓고 깊은 감성과, 진폭이 큰 음악적 표현력을 펼쳐 보인다.  3개의 교향곡을 통하여 우리는 고뇌하고 방황하는 인간의 비극적 실존 뿐만 아니라 광활한 대자연에 대한 경외마저 느낄 수 있다. 러시아색이 유달리 짙은 제4번과 비극성의 정점을 이룬 제6 <비창> 사이에 위치한 제5번 교향곡은 제4번과 마찬가지로 운명을 다룬 교향곡이지만, 첫째 악장과 마지막 악장에서만 같은 주제가 나오는 제4번과 달리 운명의 주제가 4개 악장에 모두 나타날 정도로 전곡에 통일성을 강하게 부여하려는 시도가 돋보인다. 그러나 제5교향곡은 워낙 변화무쌍하기에 지휘자가 이에 휘둘리면 산만하게 들릴 여지도 많다. 초연 뒤에 차이코프스키 자신이 제5번에 대하여 자신감을 갖지 못했던 이유도 당시 지휘자들이 이 곡을 제대로 소화해내지 못한 데에 그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다행스럽게도 제5교향곡에는 명연주가 많다. 당장 므라빈스키, 카라얀, 스토코프스키 같은 거장들이 아날로그 시대의 명연을 남기고 있고, 디지털 시대에도 얀손스, 스베틀라노프, 게르기예프, 가티 등이 출중한 명연을 남기고 있다. 이런 치열한 경쟁에 두다멜과 베네주엘라의 시몬 볼리바르 청년 관현악단이 뛰어 들었으니 이를 어떻게 평가하여야 할까. 언뜻 보기에 베네주엘라 음악가들과 차이코프스키는 어딘가 맞지 않는 조합처럼 느껴질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역시 두다멜은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다. 두다멜은 젊은 혈기를 앞세워 곡을 무리하게 끌고 가지 않는다. 오히려 그의 해석은 템포도 다소 느리고 악구 사이의 호흡이 유장한 점에서는 카라얀의 1976년 녹음과 비슷한 인상을 준다. 두다멜의 신중한 템포설정은 로열 필하모닉을 지휘한 다니엘레 가티의 빠르고 경쾌한 템포와는 대척점을 이룬다. SACD의 탁월한 음향으로 재현되는 가티/로열 필의 연주(Harmonia Mundi France)는 아마 알려진 연주들 중 가장 템포가 빠를 것이지만, 생동감 넘치는 리듬 속에 멜로디 라인을 자연스럽게 살려내며 악구간의 호흡을 기막히게 조절해낸 우리 시대의 진정한 명연주이자 명녹음이다.

 

 

    템포는 느리고 신중하게 잡았지만, 두다멜 역시 가티처럼 자연스럽게 리듬을 타며 노래할 줄 아는 지휘자이다. 특히 관악기군이 중요한 역할을 하는 이 곡의 성격을 잘 살려 시몬 볼리바르 관현악단의 관악주자들로부터 정교한 음악을 제대로 뽑아낸다. 느린 템포에도 불구하고 다이나믹에 집중하여 음악의 에너지를 모았다가 과장되지 않게 발산하는 솜씨는 예사롭지 않다. 셋째 악장의 왈츠에서도 이러한 기조는 이어져 상당히 점잖고 중후한 해석을 보이고 있다. 마지막 피날레의 서주에서 운명의 주제가 나타날 때에도 크게 다르지 않다. 급격한 변화는 3:12에 팀파니의 트레몰로에 이어 03:17부터 시작된다. 우리가 기대하던 두다멜의 리드미컬한 질주가 드디어 빛을 발한다. 그러나 빨라지면서도 지나친 흥분을 제어하여 구조적 완성도도 함께 배려하는 점을 보면 두다멜이 성숙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요컨대 세 개 악장에서 힘을 비축해두었다가 마지막에 터트리는 방식이면서도 과장됨이 없다.

 

    함께 실린 곡은 교향시 프란체스카 다 리미니작품, 32이다. 단테의 신곡에 나오는 저주받은 연인들을 다룬 이 곡은 격렬한 폭풍우 같은 도입부와 후반부의 중간에 서정적이고 아름다운 사랑의 테마를 배치하고 있다. 이 곡의 최고 명연주는 누가 뭐래도 레오폴드 스토코프스키가 뉴욕 스타디움 심포니 오케스트라를 지휘한 음반(Everest. 절판)일 것이다. 심연으로 추락하는 듯한 그 명인기와 풍부한 감성으로 다가오는 사랑의 테마는 잊을 수가 없을 정도이다. 그 스토코프스키나 스베틀라노프(Pony Canyon), 그리고 네메 예르비(Chandos)의 음반과 비교하여 들어보더라도 두다멜과 시몬 볼리바르가 그려내는 차이코프스키의 비극적 격정과 달콤한 사랑의 추억은 칭찬받을 점이 많다. 오히려 예르비보다는 두다멜이 더 원숙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이다. 곡이 끝나기도 전에 청중들이 보내는 환호에 공감하지 않을 수 없는 연주이다. 다만 반복 감상하여야 할 음반에서 이런 환호를 계속 듣게 만든 제작자의 무감각에는 다소 실망했다. 영원한 형벌에 처해지는 비극적 연인들을 그리는 음악의 종결부를 늘 환호성 속에 되풀이하여 들으란 말인가

 

    여하튼 두다멜의 거침없는 성장을 느낄수 있는 음반이다. 요즘 세태에 이처럼 생명력 넘치는 음악을 만들어내는 지휘자와 오케스트라를 달리 어디서 찾을 수 있겠는가. 베네주엘라에서, 그리고 이제는 세계를 향하여 기적의 메시지를 전하는 시스테마프로그램의 창시자인 호세 안토니오 아브레우에게 헌정되었다. 두다멜의 다음 행보도 기대한다.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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