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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다멜(Dudamel)의 피에스타(Fiest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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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용성 2009. 1. 7. 16: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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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음반을 처음 보면서 먼저 떠오른 것은 1993년 발매되었던 마이클 틸슨 토마스 지휘, 뉴 월드 심포니의 <탕가조: 라틴 아메리카의 음악> 음반(Argo)이다. 비록 단 두 곡만 같은 선곡이지만, 청년들로 구성된 오케스트라와 각광받는 젊은 지휘자가 만나 남미 음악을 다룬 점에서는 공통되니 말이다. 틸슨 토마스가 지적(知的)이고 진지한 프로그램을 모았다면, 두다멜의 선곡은 상대적으로 대중성이 풍부하다.

 

    두다멜과 시몬 볼리바르 오케스트라가 대중성이 높은 라틴 아메리카 음악만으로 프로그램을 꾸몄으니 결과는 불을 보듯 훤하다. 남미 음악의 들썩이는 리듬, 화려한 관현악의 색채, 그리고 묘하게 가슴을 휘감는 감성을 이들만큼 잘 표현하기는 힘들 것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이것은 우리 음악이라는 자신감이 넘친다. 남미에는 차베즈, 히나스테라, 빌라-로보스, 피아졸라, 레뷰엘따스, 퐁셰 등등과 같은 훌륭한 작곡가가 많은데, 음반에 실린 7명에, 상대적으로 지명도가 떨어지는 베네주엘라 작곡가 4명이 포함된 것은 두다멜과 악단의 국적이 반영된 편향이라고 할 것이다. 그러나 기존 라틴 음악 모음집과 차별화시켜 멋진 분위기를 만들어낸 바람직한 편향이다.

 

 

    음반을 여는 곡은 멕시코의 요절한 천재 레뷰엘따스의 <센세마야>이다. 스트라빈스키의 <봄의 제전>에 비유되기도 하는 이 곡은, 뱀을 죽이는 원시의식을 음악적으로 그려낸 만큼 원시적 야성이 독특한 리듬과 울부짖는 듯한 관악을 통하여 표현되는 것이 특징이다. 전광석화와 같은 빠른 템포로 야성미를 극단적으로 부각시키는 에두아르도 마타와 뉴 필하모니아의 압도적인 질주(BMG), 그 반대로 유장한 템포로 정교하고 냉철하게 곡에 담긴 현대성을 살려낸 살로넨과 LA필의 치밀함(소니)이 서로 대척점을 이루는 대표적인 음반들이다. 멕시코의 느낌을 잘 살려내기로는 엔리크 바리오스가 지휘한 멕시코 아구아스칼리엔테스 교향악단의 음반(Naxos)도 빼놓을 수 없다. 마이클 틸슨 토마스와 뉴 월드 심포니는 중도적인 템포로 곡을 조금 더 가볍고 밝게 표현하고 있다.

 

    두다멜과 시몬 볼리바르 군단이 만들어내는 레뷰엘따스의 <센세마야>는 이들 명연주들을 뛰어 넘을 정도로 압도적이다. 우선 리듬과 프레이징의 생동감은 두다멜답게 단연 최고 수준이다. 40초 이상이나 빠른 마타보다 두다멜의 해석이 더 빠르게 느껴질 정도로 박진감있는 음악을 만들어낸다. 바리오스의 음반보다 멕시코의 원시적 야성도 잘 살려내고 있다. 냉철한 살로넨과 비교하면, 정열이 불타오르면서도 정교함을 잃지 않았다. 이미 이 첫 곡만으로 이 음반의 가치는 결정된 듯하다. 나머지는 그냥 즐기면 된다.

 

    카레뇨의 마르카리테나는 베네주엘라의 민요를 원용하여 엮은 광시곡인데, 막시밀라노 발데스가 지휘한 같은 오케스트라의 음반(Dorian)보다 두다멜 쪽이 서정적인 표현력이나 박진감 면에서 더 뛰어나게 들린다. 에스테베즈의 <평원의 정오>는 인상주의적 분위기 속에 서정적인 아름다움을 담아내고 있다. 두다멜의 장점은 리듬을 타며 곡에 생명력을 부여하는 데에만 있지는 않다. 진정 느린 악곡에서 노래하면서 곡의 구조적 세부를 살려낼 줄도 안다는 것이다. 또한 다이나믹에 대한 두다멜의 섬세한 감각도 눈여겨 볼 대목이다. 마라퀘즈의 제2번은 마치 경음악을 듣는 듯 멜랑콜리가 넘치는 사랑스럽고 흥겨운 곡이다. 귀에 착착 달라붙는 친숙한 멜로디와 리듬은 우리가 퍼시 페이스나 만토바니, 자비에 쿠가 등의 연주로 듣던 라틴 음악들과 그리 거리가 멀지 않다. 로메로의 는 푸가와 베네주엘라 춤곡인 pajarillo가 결합되어 묘한 대비를 만들어낸다. 어떤 대목에서는 이상하게도 보케리니의 판당고를 듣는 듯한 기청감을 불러 일으키는 이 곡의 매력은 참 독특하다.

 

    히나스테라의 걸작 에스탄시아무용 모음곡은 작고한 에두아르도 마타가 시몬 볼리바르 교향악단을 지휘한 도리안 음반과, 마이클 틸슨 토마스가 지휘한 뉴 월드 심포니의 아르고 음반이 비교 대상이 된다. 같은 악단이지만, 마타는 조금 굼뜬 느낌이어서 생생하게 리듬을 타는 두다멜에 비하면 조금 아쉽다. 반면 틸슨 토마스는 밀도가 높고 중후하면서도 앙상블이 정교하다. 더욱이 엔지니어 콜린 무어풋의 녹음에 힘입어 선명하면서도 꽉 찬 광대역의 음향을 선사하고 있으니 흠잡을 데가 없다. 그래도 두다멜이 보여주는 풋풋한 생명력은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는 매력이 있으니, 난형난제이다. 메들리 곡을 듣는 듯한 카스테야노스의 는 떠들썩한 축제를 묘사한 음악이다. 역시 이런 곡에서 두다멜과 그의 악단은 물 만난 고기와 같다. 마지막 곡은 미국 작곡가 레너드 번스타인의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중 맘보이다. 마치 이 곡만 다른 곳에서 녹음된 듯 실황공연의 느낌이 분명하다. 왁자지껄한 분위기, 악단원들이 중간 중간 외치는 맘보!”, 그리고 청중들의 열화와 같은 환호. 이런 축제 분위기에는 이런 결말이 근사하게 잘 어울린다. 더 진지한 라틴 아메리카 음악들도 많지만, 이 음반에 담긴 음악들은 말 그대로 축제이고 몸을 움직이며 즐겁게 들으면 된다. 단연 특선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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