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아닌 사람이 음악을 글로 표현하다보면 문학적 표현들을 자주 사용하게 마련이다. 비전문가들 사이의 의사소통방법으로는 그런대로 설득력 있는 방법이겠으나, 너무 주관적이라 작품의 음악적 본질을 왜곡할 위험이 있어 문제이다. 그러나 어쩐 일인지 아놀드 백스의 음악은 표제가 없더라도 문학적 표현이 잘 들어 맞아 굳이 이런 고민을 할 필요가 없을 것도 같다. 그의 음악에서 끊임없이 나타나는 가파른 절벽과 바다, 구름이 깔린 하늘, 바람, 요정, 옛 성이 비치는 풍경과 거기 얽힌 전설과 이미지들보다 더 훌륭한 문학적 소재가 또 어디 있겠는가.
바그너를 연상시키는 거대벽에서 드뷔시의 몽환으로, 켈트 민요에서 스트라빈스키 풍의 현대적인 리듬까지 종잡을 수 없이 오가며 변화무쌍하게 펼쳐지는 그의 음악은 얼핏 듣기에는 혼란스러울 정도이다. 그러나 자꾸 들을수록 혼돈은 사라지고 일관된 개성을 지닌 매혹적인 세계가 펼쳐진다. 누구도 가보지 못한 비경(秘境)을 발견하게 되는 기쁨은 상상력을 풍부하게 키워주는 그의 음악이 주는 선물이다.
아놀드 백스(Arnold Bax)는 1883년 영국의 부유한 중산층 가정에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여기저기 외국을 여행하면서 견문을 넓혔다고 한다. 그런 성장배경 때문에 순수한 잉글랜드 출신임에도 다른 문화를 폭넓게 받아들일 개방성을 갖게 되었을 것이다. 잉글랜드의 부잣집 아들인 그를, 영국에서 따돌림당하는 아일랜드와 연결시킨 고리는 왕립음악원에 재학 중에 읽은 W. B. 예이츠(Yeats)의 시였다고 한다. 시를 읽고 자기가 태어나 자란 곳이 아닌 전혀 다른 세상, 그것도 같은 잉글랜드인들이 편견을 가지고 있는 세계에 빠져 든 것만 보아도 이미 평범한 사람은 아니다. 그 애정도 매우 깊어 아일랜드에 터를 잡고 살면서 더못 오바이른(Dermot O'Byrne)이라는 필명으로 시와 소설을 쓰고 아일랜드 전설과 고어(古語)까지 공부했다고 하니 정말 대단한 정열을 가진 사람이었던 모양이다. 아직도 이 아일랜드 시인과 작곡가 백스가 같은 사람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는 아일랜드 사람들이 거의 없다고 할 정도이니 그의 아일랜드 사람되기는 완벽하였다고 평가할만하겠다. 그러나 세상사에는 항상 댓가와 고통이 따르는 법. 제1차 세계대전 속에서 많은 친구들을 잃은 것까지는 동시대 영국인들 모두의 고통이었다고 치더라도 1916년 더블린에서 일어난 부활절 봉기 이후 많은 아일랜드 친구들이 희생당한 사건으로 받은 충격은 순전히 아일랜드를 사랑한 댓가였던 셈이다. 고통은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꿈과 이상을 추구하던 이 섬세한 예술가의 사생활도 결코 순탄치만은 않았다. 결혼 후 해리엣 코헨(Harriet Cohen)이라는 피아니스트와 깊은 열애에 빠져 들게 되었는데, 그런 와중에도 가정을 지키려고 노력하느라 정신적 소모도 심하였다고 한다. 이런 부조리한 현실에 처하여 개인이 택할 수 있는 대응방법은 크게 세 가지일 것. 맞서든가, 대세에 부화뇌동하든가(대충 산다는 의미), 아니면 도피하든가. 백스가 택한 길은 도피였다. 음악이, 문학이 그의 도피처였던 셈이다. 아놀드 백스는 그렇게 꿈과 현실을 오가며 살다가 1953년 세상을 떠났다.
신비의 심연으로 침잠하는 듯한 그의 음악은 바로 이러한 드라마 같은 인생 역정과 다른 세상으로 도피하려는 마음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그의 교향곡과 음시(Tone Poem)가 담고 있는 감정의 진폭은 크고, 울림은 깊다. 그래서 그의 교향곡을 듣는 일은 마치 미지의 세계로 떠나는 여행과도 같다. 불분명한 구성, 인상파의 분위기, 신비한 서정, 가열차게 울려대는 금관과 타악기의 공격적인 음향, 잦은 클라이막스, 원시성을 부추기는듯한 리듬 등이 어우러져 만들어지는 드라마틱한 세계는 동시대 다른 영국 작곡가들의 관현악곡에서 종종 보이는 공통점, 이를테면 온건함이나 중용, 뜨뜻미지근함 등과는 전혀 차원을 달리한다.
백스의 음악을 들으며 우리는 무엇을 얻으려고 하는 것일까. 대담한 가설이지만, 백스의 교향곡이나 교향시가 할리우드 황금기 영화음악의 거장 버너드 허먼(Bernard Herrmann)의 세계와 연결되는 대목에 답이 숨어있지 않을까. 적막한 겨울바람이 연상되는 교향시 ‘11월의 숲’ 첫 대목은 허먼이 작곡한 ‘현기증’(Vertigo)이나 ‘화씨 425’의 음악과 크게 다르지 않다. 로자, 코른골트, 왁스만 등과 함께 할리우드 황금기의 4대 거장이라고 할만한 버너드 허먼은 현대의 영화음악 애호가들과 작곡가들 사이에서 거의 절대적 인기를 누리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허먼의 심리 스릴러 영화음악들은 인상파같은 낭만주의에 터잡아 인간 내면에 담긴 무의식의 신비한 영역를 그려내고 있는데, 이 부분이 백스가 그려내고 있는 꿈과 환상의 신비로운 세계와 절묘하게 만난다. 바로 그 둘이 만나는 지점은 현대인의 깊은 내면에 숨은, 잃어버린 원시성에 대한 회귀본능이 아닐까. 코른골트나 스타이너가 음악을 맡은 영화를 보면서 후기 낭만주의의 음악어법에 익숙해진 세대가 말러를 부활시켰듯이(존 마우체리의 주장) 허에 익숙해진 세대가 이제 그에 대응하는 교향곡 작곡가 아놀드 백스를 부르고 있는지도 모른다.
* 『팡파르』(Fanfare) 1998년 5․6월호에는 백스의 교향곡에 대한 레이스(Ian Lace)의 글이 실려 있는데, 전문가나 지휘자와의 인터뷰를 포함하고 있는 아주 좋은 글이니 백스에 관심있는 분들은 반드시 읽어보시기를 권한다. 레이스가 추천하는 백스 교향곡의 감상방법 : 7개의 교향곡들을 순서대로 한 차례 듣고 다시 같은 방식으로 또 들을 것. 일곱 교향곡이 하나의 연속된 대곡이기 때문이라는 것인데, 그대로 따라 해보면 옳은 말임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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