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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토니아의 소리 : 에두아르트 투빈 (Eduard Tubin)

음악가와 음악

by 최용성 2009. 5. 4. 1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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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애

    에두아르트 투빈(Eduard Tubin)1905618일 에스토니아의 호숫가 마을에서 태어났다. 1926년 타르투의 사범학교를 졸업하고 교사로 일하기도 하였지만, 1924년부터 1930년 사이에 타르투 음악원에서 아이노 엘러(Heino Eller)로부터 작곡을 배우면서 음악가의 꿈을 키웠다. 에스토니아 음악의 아버지로 칭송받는 엘러의 제자로는 아르보 패르트(Arvo Pa´rt)도 있지만, 엘러의 민족음악 정신을 계승하여 보편언어로 완성한 쪽은 투빈일 것.

 

    투빈은 타르투에서 극장 전속 지휘자로 활동하였다. 오전에는 리허설을 하고 저녁에는 실연을 지휘하느라 낮시간에 틈틈이 작곡을 하였다. 이때 지휘자로서 쌓은 경험이 교향곡 작곡에 필요한 역량을 쌓는 데에 큰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1938년 헝가리의 부다페스트를 방문한 투빈은 코다이와 바르토크가 헝가리 민요를 편곡한 작업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 고국으로 돌아온 그는 에스토니아의 민요를 연구하기 시작하였고, 이것은 뒷날 그의 음악에 중요한 자양분이 되었다.

 

    발트 해() 연안에 있는 작은 나라 에스토니아는 역사적으로 아주 짧은 기간 동안만 주권을 행사하였을 뿐이고 줄곧 외세의 지배를 받았던 모양이다. 투빈은 소련으로부터 주권을 빼앗긴 조국을 떠나 1944925,000명의 모국인들과 함께 스웨덴으로 망명한다. 망명자들을 위하여 마련된 임시 거처에 짐을 풀던 투빈의 마음 속에는 만감이 교차하였을 것이다. 소련에게 주권을 빼앗긴 약소국 출신의 이 망명 작곡가에 대하여 스웨덴은 기꺼이 활동무대를 제공하였다. 투빈은 드로트닝홀름 왕립 궁정 극장에서 옛 오페라를 복원하는 일을 하면서 작곡을 계속하였다. 스톡홀름 시 명예상 등을 비롯한 여러 상과 학위, 왕립 스웨덴 음악 아카데미의 회원 위촉 등의 보답이 돌아갔다. 패거리 문화에 젖어있는 우리는 과연 우리 나라에 망명한 약소국의 작곡가에게 그 정도의 대우를 할 수 있을까. 성찰해볼 대목이다.

 

    에두아르트 투빈은 그렇게 제2의 고향인 스톡홀름에서 활동하다가 1982117일 세상을 떠났다.

 

 

음악

    조국을 잃고 망명지에서 평생을 보낸 투빈에게는 망향(望鄕)과 민족애라는 화두가 평생 따라다녔다. 그의 음악이 지닌 민족성, 강인한 의지에서 나오는 추진력과 투쟁성, 그리고 망향의 정서는 바로 그와 그의 조국이 걸었던 험난한 역정을 반영한 결과일 것이다이 점에서 투빈과 로자(Miklos Rozsa)는 닮은 점이 많다. 두 사람 모두 모국의 민속 음악을 영감의 샘으로 삼았다. 앞으로 운동해가는 추진력, 그 에너지의 흐름에서 성취되는 정신의 고양(高揚), 현대적 음향 속에서 끊임없이 들려오는 서정적이고 민족적인 노래, 주제와 동기들을 치밀하게 직조(織造)하기, 드라마틱한 서사, 푸가와 대위법의 절묘한 활용 등등은 두 사람 모두에게서 발견되는 특징이다. 물론 음악의 분위기만 놓고 보면 투빈이 서 있는 지점은 북구 자연의 아름다움을 노래한 시벨리우스와, 정치적 격동을 그려낸 쇼스타코비치 사이에 더 가깝겠지만.

 

    투빈은 본질적으로 다성적(多聲的)인 작곡가이다. 여러 개의 성부(聲部)가 밀도높게 결합되어 정연한 논리적 구조물을 만들어내는 그의 음악에는 숨은 비경(秘境)이 많다. 악기들 사이의 조화와 대립, 각 악기 고유의 색채를 효과적으로 배열한 그의 관현악법은 순수 음향의 아름다움을 느끼게 하는 매력을 발산한다.

 

    투빈의 작품세계는 다양한 장르에 걸쳐 있지만, 그 중심에는 교향곡이 자리잡고 있다. 투빈이 작곡한 11곡의 교향곡(미완성인 제11번의 1악장을 포함)은 쇼스타코비치, 심슨(Robert Simpson), 말콤 아놀드, 홀름뵈(Vaghn Holmboe) 등의 사이클과 더불어 가장 중요한 20세기 교향곡 사이클의 하나일 것이다. 11곡의 교향곡 안에서 투빈이 사용하는 주제와 동기들은 조금도 흐트러지지 않고 뚜렷한 목적지를 향하여 끊임없이 운동해간다. 그의 교향곡은 항상 발전적이어서 늘 무엇인가를 열정적으로 추구하는 것같은 느낌을 준다.

 

Konrad Mägi Southern Estonian Landscape 1916–1917 oil, canvas 51.5 × 65 cm

 

    침엽수가 우거진 숲, 맑고 시린 하늘, 고요한 호수, 적막한 찬 바람 등이 연상되는 자연의 아름다움(실제 에스토니아의 풍경이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그 아름다움을 뒤덮는 암울한 전쟁 또는 재앙의 기운, 그리고 이 모든 것을 극복하려는 듯한 강인한 의지. 제한된 말로만 그의 음악을 표현할 수밖에 없어 안타깝다. 투빈이 불러주는 에스토니아의 소리에서, 마음의 고향을 잃은 우리 자신에게도 절실히 다가오는 보편적 망향가(望鄕歌)를 들을 수 있을 것이다

 

    * 상세한 정보는 http://www.tubinsociet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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