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이한 레퍼토리나 잘 알려지지 않은 작곡가에 관심이 많은 편이지만, 프랑스 작곡가 샤를르 투르느미르(Charles Tournemire)는 참 생소하다. 이름을 한 두 차례 본 기억이 나지만, 그의 곡 중에서 내 뇌리에 남아 있는 것은 단 한 곡도 없다. 안드레아스 실링(Andreas Sieling)이 베를린 돔의 오르간을 연주한 이 SACD를 객관적으로 평가할 마땅한 기준도 없다. 비교할 음반이 아예 없기 때문이다.
투르느미르는 음악이란 가톨릭 교회를 위하여 봉사하는 것이라는 신념을 가진 작곡가이자 오르가니스트였다고 한다. 하느님의 영광을 위한 음악이 아니라면 무가치하다는 확신에 사로잡힌 그에게 다른 음악관을 가진 음악가들은 타도할 적이거나 상종하지 못할 존재였다니 참 특이한 사람이었던 것같다. 이런 사람들은 자기가 만들어놓은 세상의 틀 안에서만 모든 것을 바라보게 되는데, 주류가 되면 억압적 사회체제를 만드는 데에 힘을 보태기 쉽고(요즘 우리 사회가 겪고 있는 한심한 상황을 생각해보시라), 비주류가 되면 스스로를 영웅화하면서 고립시키는 길을 택하기도 한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오르간과 기독교(가톨릭을 포함한 넓은 의미임)는 워낙 찰떡궁합이다 보니 투르느미르의 음악관이 그의 작품세계를 망가뜨린 것같지는 않고 오히려 개성적인 창작과 연주에 도움이 된 듯하다. 이래서 어떤 점을 두고 좋고 나쁘다고 쉽게 평가하기란 어려운 일.
이 음반에 실린 곡들은 특이하다. 특히 즉흥작품 몇 곡은 투르느미르가 악보를 남긴 것이 아니라 그야말로 즉흥으로 오르간을 연주하여 1930/1931년에 녹음한 음반을, 제자이자 <레퀴엠>으로 유명한 뒤르플레(Durfle)가 채보하여 세상에 전한 것이라니 이래서 제자는 잘 키우고 볼 일이다. 음반에 수록된 곡들은 그레고리안 찬트를 기초로 한 오르간 독주곡이거나 또는 합창곡이다. 그 분위기야 익히 짐작이 가실 것이지만, 요약하면 신비롭고 경건한 음악이라는 것이다. 이 음반에 실린 오르간 곡들은 압도적 음량으로 오디오의 극한을 시험하는 곡들이 많지는 않다. 오히려 그 때문에 호소력이 있다. 오르간의 다양한 음향이 신비롭고 차분하게 조용한 공간 속에 울려퍼지는 것을 듣노라면 우리가 세속적인 욕망에 허덕이며 많은 것을 잃고 살았던 것은 아닐까 되돌아보지 않을 수 없다. 때묻지 않은 청정 음악의 세계가 이 음반에서 펼쳐지고 있고, 안드레아스 실링(Andreas Sieling)의 오르간 연주는 유명한 오르가니스트들을 앞선다고 해도 무방할 정도로 뛰어나게 투르느미르의 신비주의를 제대로 표현하고 있다. 베를린 대성당 성가대 슈콜라의 합창도 그레고리안 찬트의 순수함을 재현해낸다.
잘 알다시피 오르간과 합창 음악은 녹음과 재생 면에서 상당히 어려운 분야인데, SACD 멀티채널 포맷 덕분에, 좀 과장하여 말하자면 합창과 오르간이 울리는 교회의 높이와 길이가 느껴질 정도로 자연스러운 임장감이 재현되고 있다. 특히 통상의 녹음에서는 부담스럽게 느껴지는 오르간 음향과는 차원이 다른 아름다운 오르간 음향을 들을 수 있다. MDG가 추천하는 2+2+2 방식의 멀티채널 재생에서는 어떤 음향이 재현될까 궁금해지기도 한다. 특히 오르간 음악이나 종교음악의 애호가들, 영적 세계에 관심이 있는 분들은 물론이고 오디오파일들에게도 추천한다.
SACD 6,000 타이틀 (0) | 2009.09.07 |
---|---|
미클로시 로자(Miklós Rózsa) : 3개의 합창모음곡-벤허, 쿼바디스, 왕중왕 (0) | 2009.08.27 |
크라이츠베르크가 지휘한 드보르작(Dvorak) 교향곡 제6번 (0) | 2009.04.17 |
라벨의 볼레로 (0) | 2008.11.08 |
시모네 영이 지휘한 브루크너 교향곡 제2번 (0) | 2008.08.29 |
댓글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