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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모네 영의 브루크너 교향곡 제8번

SACD

by 최용성 2009. 12. 10. 1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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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율이 담긴 큰 덩어리(block)들이 차례로 배치되어 끝없이 부풀어 오르며 확장하는 유기적 음향의 포만감잦은 멈춤과 거기서 생기는 순간의 정적논리적 연관 없이 나타나는 자유로운 아이디어들 등으로 묘사될 수 있는 그의 교향곡 세계에는 진정한 의미의 발전은 없다같은 자리에서 자아주변 풍경자연지구우주로 점점 확장되는 열린 세계가 있을 뿐이다그래서 그의 교향곡은 들을수록 경이롭다.

 

    브루크너 교향곡의 최정점이라고 할 수 있는 제8번에 이르면, 판본 문제를 떠나, 명반이 적지 않다.  하스 판에는 카랴얀(DG), 반트(RCA), 노박 제2고판에는 요훔(DG) 등이 있다. 1887년 초판본에는 투박하지만 핵심을 찌르는 틴트너(NAXOS)가 있다. 1887년 판본은 하스판이나 그 뒤의 노박판 제2고와는 다르다. 1악장의 마무리가 총주로 웅장하게 끝나는 부분, 스케르초의 트리오 부분, 셋째 악장에서 심벌즈를 4번이나 더 부딪치는 부분 등이 두드러지게 다른 대목일 것. 물론, 카라얀이 지휘한 빈 필하모닉의 연주를 최고로 치는 내 기준으로 보자면 초판과 제2고를 절충한 하스 판이 가장 멋지지만, 전개방식이 더 직설적이고 꾸밈없이 과감한 초판본도 충분한 설득력을 지니고 있다.

 

 

    시모네 영은 1887북클릿 표지에 1878년이라고 기재된 것은 오기이다초판본을 택하였다. 과연 쟁쟁한 대가들이 포진한 치열한 경쟁구도에서 정상을 넘볼 수 있을까? 답부터 말하자면, 충분히 그렇다. 영의 접근은 제2, 3, 4번 교향곡에서 보여준 그대로이다. 영의 해석은 브루크너를 텍스츄어가 두텁기만 하고 악구의 논리적 연결에 미숙한 작곡가로 보이게 하지 않는다. 각 성부들은 아주 투명하고 섬세하게 세부를 드러내고, 멜로디 라인은 서정적이면서도말러와 브루크너의 서정성은 슈베르트와 닿아 있다고 생각한다명쾌하다. 실황임에도 불구하고 주선율과 부선율, 대위적 구절들을 투명할 정도로 명료하게 드러내면서도 절묘하게 감각적인브루크너 음악이 고리타분하게 종교적인 음악만은 아니라는 점을 보여준 것은 시모네 영의 큰 공적이다색채마저 부여하고 있으니 마치 기존에 듣던 브루크너 연주에는 먼지나 이끼가 끼어 있었던 것처럼 느껴질 정도이다.

 

    전반적으로 템포는 다소 빠른 쪽이다. 특히 스케르초 악장이 그렇다. 반면 첫째 악장, 아다지오와 피날레에서는 머뭇거리지 않아 명징하면서도 충분히 호흡을 가다듬어 넉넉하게 음미할 공간도 잘 만들고 있다. 매우 강력하면서도 서두르지 않고 질주하는 마지막 악장의 행진곡은 프로이센 기병이 아니라 광활한 우주를 떠다니는 우주함대의 행렬을 보는 듯하다. 영이 이끄는 함브루크 필하모닉의 연주는 틴트너가 지휘한 아일랜드 국립교향악단의 투박한 실력을 훌쩍 뛰어넘고, 노박판 제2고를 택한 요훔이나 하스판을 택한 반트의 베를린 필하모닉이 만들어내는 음향보다 훨씬 세련되고 정교하다. 정치하게 드러낸 세부가 겉돌지 않고 화성의 조화를 이루어 큰 우주를 만들어낸다. 바로 이것이 브루크너의 세계다. 자아의 범우주적인 확장!

 

 

    영은 SACD 포맷의 저력을 십분 활용하고 있다. 특히 멀티채널로 재생되는 음향은 선명할 뿐만 아니라 3차원 공간감을 살려내면서 브루크너의 혼을 뿜어댄다. 진정 우주적인 비전을 구현한 음악임을 실감하게 하는 음향이다. 같은 SACD 포맷인 하이팅크의 로열 콘체르트허바우의 실황(RCO LIVE)이나 반트의 베를린 필 실황(Esoteric/RCA)을 가볍게 뛰어넘는 멋진 녹음이다. 진심으로 추천해마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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