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흐(KOCH)에서 진행 중이던 제임스 세다리스(James Sedares) 지휘/ 뉴질랜드 심포니 연주의 미클로시 로자(Miklos Rozsa) 관현악곡 전집은 제5집까지 발매되고 몇 곡을 남겨둔 채 중단되었다. 영국의 명품 레이블인 샨도스(CHANDOS)에서 새로 진행하는 로자의 관현악 사이클이 전곡을 아우를지 어떨지는, 아직, 알 수 없다. 낙소스에서 진행 중인 로자 사이클도 어디까지 갈지 알 수 없는 상태.
샨도스가 2008년에 발매한 제1집 음반에는 연주회용 서곡, 3개의 헝가리 영상, 트리파르티타, 헝가리안 세레나데가 수록되어 있다. 로자의 초기작부터 후기작까지 고르게 선곡한 안목이 돋보인다. 지휘자 루몬 감바(Rumon Gamba)는 늘 그렇듯이 거침 없이 직설적으로 시원스럽게 질주하면서도 변화무쌍한 굽이굽이를 상당히 잘 만들어낸다. 평소 조금 소극적이던 BBC 필하모닉에서 극적인 긴박감과 함께 화려하고 색채적인 음향을 끌어내는 데에도 성공하고 있다. 그 결과 로자 관현악 음악의 짙은 낭만적 특성과 박진감, 뛰어난 오케스트레이션이 다른 어떤 연주보다 더 잘 살아난다. 그러면서 세부 묘사에도 공을 들여 로자 음악의 다성적(多聲的)인 특징을 놓치지 않고 있다. 선율의 흐름을 잘 살려내 로자 음악 특유의 아름다운 서정성을 돋보이게 하는 대목은 남다른 감성의 반영일 것 .
헝가리 농민요의 특성이 두드러지는 3개의 헝가리 영상에서는 적극적으로 루바토를 구사하며 집시적인 감각을 불어넣는 듯한 감바의 해석이 아주 멋지다. 반면 세다리스의 해석에서는 순수음악적 측면이 강조되고 민속적 색채는 좀 물러난다. 흥미로운 것은 감바의 음반에서는 세다리스가 지휘한 코흐 음반 등과는 다른 부분들이 여기저기 나타난다는 점. 사용된 악보 자체가 다른 것 같다.
가장 후기 작품인 트리파르티타는 어둡지만 강력히 질주하는 역동적인 곡이다. 데이빗 아모스/런던 심포니의 연주(아르모니아 문디)가 명문 오케스트라답게 명인기적인 호연이 돋보이지만 해석 자체가 너무 정석적인 느낌을 주고, 베르너 안드레아스 알베르트/필하모니아 훙가리카 음반(CPO)은 헝가리 연주자들이라는 강점에도 불구하고 앙상블이나 음향 면에서 좀 처지는 편이다. 반면 루몬 감바는 이 곡에 내재된 어둠과 그것을 뚫고 비상하려는 절망적 몸부림을 극적으로 표현해낸다.
헝가리안 세레나데에서는 민속적 색채보다는 순음악적 요소를 강조하고 있는데, 그것이 진부하지 않고 즐겁게 들리는 것은 감바의 역량 덕분일 것. 기량이 다소 처지는 듯한 클로스/뉘른베르크 심포니(Citadel)나, 헝가리 색과 실내악적 묘미를 강조한 스몰리지/부다페스트 심포니(낙소스)의 연주에 비하여 BBC 필하모닉 독주자의 기량이나 앙상블이 월등히 정교하고 뛰어나다.
“미클로시 로자의 관현악곡은 극도로 흥분을 불러일으키고, 열정적이며 도취적이고, 더욱더 알려질 만한 가치가 있다. …사람을 사로잡는 강렬하게 아름다운 음악”이라고 한 지휘자 루몬 감바의 확신이 연주와 녹음 모두에서 훌륭하게 구현된 음반이다. 절판된 코흐의 로자 시리즈를 대체할만한 멋진 출발이다.
* 코흐 레이블의 로자 시리즈 제1집 음반. 처음부터 시리즈로 기획된 것같지는 않다. <그라모폰>에서 편집자가 선정한 이달의 10대 음반으로 선정되었다. 출세작인 '주제, 변주와 피날레'를 비롯하여 3개의 헝가리 영상, 헝가리 야상곡, 연주회용 서곡을 수록하고 있다. 제임스 세다리스가 지휘한 뉴질랜드 심포니는 변방 오케스트라라는 선입견을 뛰어넘는 훌륭한 연주를 선보이고 있다. 마이클 파인이 프로듀서로서 전성기를 구가할 때 만든 음반답게 생생하고 밀도감 있는 녹음도 돋보인다. 20여분에 이르는 주제, 변주와 피날레, 개정판을 들을 수 있는 사실상 유일한 CD였기에(번스타인의 뉴욕필 데뷰음반이 있으나 구하기 쉽지 않다) 절판된 아쉬움이 크다. 새롭게 리마스터링하여 나오면 좋을 음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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