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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온 로마의 혼-로자(Rózsa): 벤허(BEN-HUR)

Miklós Rózsa

by 최용성 2010. 7. 7. 1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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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클로시 로자(Miklos Rozsa)는 영화 <벤허>를 위한 음악에서 다양한 독자적 주제들을 유기적으로 결합하여 화면으로만 말할 수 없는 영화의 내면세계, 숨어있던 영성을 드러내준다. 음악의 심리적 폭과 깊이는 심지어 영화 자체를 뛰어 넘을 정도. 인간 정서의 가장 미묘한 부분에서부터 극도로 장대한 서사적 부분까지, 세속에서 거룩함까지 완벽한 통합이 이루어지고 있다. 이 대규모 영화음악에서 로자는 절망을 뛰어넘어 희망을 이야기한다. 시공을 초월하여 감동을 주는 음악이다.

 

    『그라모폰』의 마크 워커(Mark Walker)는 <벤허>를 “논란의 여지는 있겠지만, 지금까지 작곡된 가장 훌륭한 영화음악이자 로자의 모든 작품 중 가장 위대한 작품”이라고 평가하고 있다. 많은 로자팬들이 <벤허>를 합창교향곡에 빗대어 이야기하기도 한다. 그만큼 규모나 내용 면에서 기념비적 작품이라는 뜻. 영화와 마찬가지로 <벤허> 음악에는 난해하거나 실험적인 부분은 없다. 그러나 음악사상 다른 누구도 이루지 못한 독창적인 세계가 그 안에 있다. 로자 이전에 그 누구도 고대 로마와 이스라엘의 혼을 이처럼 완벽하게 음악화해내지 못했다. 영화음악의 거장 데이빗 랙신(David Raksin)의 말처럼 이 걸작은 “영화의 영혼에 가까운 음악”, 아니 '영화의 영혼 그 자체'라고 할 수 있는 음악이다.

 

    <벤허>의 오리지날 사운드트랙을 듣다보면, 영화가 요구하는 음악을 작곡하면서도 구조나 형식에 천착하는 신고전주의자 로자의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심지어 구조적 완결성을 지키기 위하여 템포를 빠르게 잡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는 경우도 있다.  

 

    여러 주제가 함께 나오는 복잡한 구성의 음악에서는, 다른 작곡가들처럼 주제 한 둘을 희생시켜 청중이 듣기 편한―상업적으로도 유리한―연결을 시도하기보다는, 템포를 빠르게 설정하거나 경과부 등의 생략을 감수하면서까지 주제를 온전히 발전시켜 곡 전체의 통일성을 확보하는 것이 로자 영화음악의 특징이다. 예를 들어 ‘전차들의 행진’에서는 팡파르에 이어 행진리듬이 2회 반복되는 경과부나 트리오에서 벤허의 주제가 나타나기 전의 경과부가 모두 생략되어 연주된다.

 

    로자가 새로 녹음한 음반을 낼 때마다 원래의 음악적 아이디어들을 가지고 악보를 재조정하는 것도 그 때문일 것. 이런 측면에서 보자면 로자의 음악을 작곡가의 의도대로 복원하거나 해석하는 일이 생각보다 어렵다는 것을 알 수 있다(그런 점에서 인트라다가 발매한 <아이반호>와 <줄리어스 시저> 음반은 정말 탁월하다). 영화 속에 나온 템포나 강약법대로 연주한다고 해서 로자의 음악적 아이디어가 정확히 표출되는 것이 아니라는 말. 그렇지만, 사운드트랙은 작곡가 자신이 영화를 위하여 해석한 최초의 자작자연이니만큼 다른 무엇과 바꿀 수 없을만큼 특별한 가치를 지니는 것도 엄연한 진실.

 

1959년 아카데미 극음악 작곡상: 미클로시 로자와 진 켈리

 

    소니 클래시컬에서 발매한 EU 제작 <벤허> 음반은 영화를 위하여 로자가 지휘한 MGM 스튜디오 오케스트라와 합창단(극히 일부는 이탈리아 오케스트라)의 사운드트랙 녹음 전부―영화에 삽입된 곡은 물론이고 미삽입곡까지 담겨져 있다―를 2장에 담고 있다. 1996년 미국의 라이노 레이블에서 디럭스 버전으로 발매되어 오랫동안 카탈로그를 지켰지만, 우리나라에는 잠시 수입되어 유통되었을 뿐 평소에 찾아보기는 어려웠었다. 그 중에 하이라이트만 모아 1장으로 출시한 EMI 음반이 유통된 적도 있다. 하지만, 영화의 명성이 무색하게 우리 나라에서 꽤 오랫 동안 <벤허>의 음반은 절판 상태였다고 보아도 무방하다. 그러니 국내 애호가들에게도 14년만에 다시 기회가 온 셈. 더욱이 같은 외관을 갖췄으면서도 1996년보다 더 저렴한 가격으로 왔으니, 고환율 정책 등의 부작용으로 물가가 뛴 2010년 한국 상황에서는 좋은 선물을 받는 느낌마저든다. 그야말로 금상첨화!

 

    <벤허>에는 버릴 곡이 없다. 심지어 양치기의 뿔피리(디스크 1의 5번 트랙)가 전주곡(6번 트랙)의 팡파르로 이어지는 가교 역할을 할 정도. 따라서 곡의 전모와 진가를 체험하려면 반드시 처음부터 끝까지 2장을 모두 들어야 한다(물론 디스크 2의 제2번 트랙 '아리우스의 잔치'에서 앞 부분은 영화 속에서 아리우스가 연주를 중단시키느라 갑자기 중지된 것이어서 음악적으로는 굳이 실을 필요가 없다. 기계적인 '완전'을 고집하다보면 이런 식의 지나친 선택을 피할 수 없게 된다.  디스크 1의 '사막' 장면에서 음악의 흐름이 끊어지는 편집도 거슬린다. 전체적으로 그런 부분이 많다고는 할 수 없지만, 음악감상에는 마이너스 요소라고 할 것. 아마 또 한 장의 추가 CD에 따로 담아야 할 보너스 트랙을 2장에 최대한 싣다보니 생겨난 일일 것이다. 트랙 구분도 너무 많다고 할 수 있다) .

 

    현명하게도 소니는 음반 2장을 그대로 두되 2포1 쥬얼 케이스에 담은 일반 버전과, 라이노 레이블이 발매했던 원형 그대로인 스페셜 패키지 형태의 디럭스 버전으로 2종을 출시했다. 음반을 여기 저기 갖고 다니며 들어야 할 사람이 아니라면, 라이노 레이블 시절보다 더 저렴하게 나온―물론 소니에서 나온 일반 버전보다는 비싼―디럭스 버전을 무조건 구입하라고 말하고 싶다. 케이스의 품격은 말할 것도 없고(다만 디럭스 버전은 책자형이어서 표준규격이 아니라 불편할 수는 있겠지만, 무슨 문제랴. 그래도 <벤허> 아닌가), 음악해설만 실린 일반 버전과 달리 상세한 내용과 귀한 사진을 담아 자료가치가 높은 북클릿만 놓고 보더라도 비교불허이다.

 

 

    이 전곡 음반에는 최종적으로는 영화에 나오지 않은 음악까지 포함하여 모두 150여분에 이르는 곡들이 담겨 있다. 굳이 트집을 잡자면 메살라가 안토니아 요새에 도착하였을 때 울려 퍼지는 7초 가량의 짧은 팡파르가 빠져 있으니 전곡이 실리지는 않은 셈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효과음 없이 녹음된 팡파르 음원을 구할 수 없어 빠졌다고 한다), 그게 무슨 대수겠는가(다만, 당시 녹음되었지만, 영화에 사용되지 않은 음악이, 2장에 실린 음악 외에 더 존재하고 이들까지 담은 3장의 해적판도 나와 있다고 한다). 오케스트라의 연주가 조금 구식으로 느껴지는 대목도 더러 있지만, 전반적으로 곡의 해석이나 앙상블은 매우 뛰어나고 균형 잡혀있다. 더욱이 영화에 사용된 음원이니만큼 극적인 추진력과 긴박감, 그리고 감성적 표현은 단연 으뜸이다. 세월이 흘렀지만, 선명하고 따뜻한 스테레오 녹음은 놀라운 수준이다.

    작곡가의 당시 자작자연을 제대로 들을 수 있다는 점에서 앞으로 아무리 훌륭한 <벤허> 음반이 나오더라도 늘 출발점이 될 명반이다.


    재녹음 앨범으로는 로자가 지휘한 내셔널 필하머닉 연주의 1977년 데카 음반(현재는 듀톤 레이블로 다시 발매된 이 음반은 원래 LP 시절 멀티채널 방식인 페이즈 4 스테레오로 녹음되었다), 카를로 사비나가 지휘한 로마 심포니의 음반(이 음반이 종래 오리지날 사운드트랙으로 군림하고 있었다), 에리히 클로스(이 사람은 실존 지휘자이지만 로자가 그 이름만 빌려 지휘한 것이라는 의심이 계속되고 있다. 로자 자신이 캐나다 토론토의 음악회가 끝나고 이를 인정했다는 주장도 있다)가 지휘한 프랑켄란트 심포니의 음반(오케스트라의 역량이 3종의 음반 중에서 가장 떨어진다)이 있다.

 

    세 가지 음반은 나름의 특색이 있고 수록곡이나 악보도 서로 달라 따로 들어볼 가치가 있다. 사비나와 클로스의 음반을 2장으로 묶은 CD는 종전에 소니가 발매하였다가 절판된 적이 있다. 셋 중에 하나를 꼽으라면 단연 로자가 내셔널 필하머닉을 지휘한 음반이다. 실제 연주회에 적합하도록 작곡가 자신이 개정한 12곡의 모음곡 형식을 취하고 있는데, 음악 전체의 연결, 통일성과 구성미가 돋보인다. 곡의 배열순서도 영화 순서에 따르지 않고 음악적으로 의미있게 잘 짜여져 있다. 연주 기량면에서 다른 음반보다 뛰어나고, 색채적으로 화려한 70년대 중반의 녹음도 탁월하다. 이것은 모음곡 중에서는 가장 좋은 음반으로, 이번에 출시된 소니의 디럭스 앨범과 더불어 반드시 소장하여야 할 명반이다. 

 

   * 2010년에 발매되었지만, 소니 음반은 1996년 발매된 라이노 레이블 버전의 마스터를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 그렇다면 음질도 같아야 한다. 그런데 실제 들어보면 음질이 미세하게 다르다. 라이노 버전도 좋지만, 이번에 발매된 소니 버전이 아주 조금 더 선명하고 해상력이 향상된 것처럼 들린다. 라이노 버전은 미국에서, 소니 버전은 유럽(오스트리아) 에서 제조되었다. 이것이 제조국에 따른 음반의 음질 차이를 증명하는 것인지, 그 동안 프레싱 기술이 발달한 결과인지, 아니면 내 오디오에서만 그런 것인지, 그도 아니면 단순한 청각기억의 착각 때문인지 정확히 알 수 없는 일.   

  

삭제된 장면. 혹시 디스크 1의 13번째 트랙(The Unknown Future)이 흐르던 장면이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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