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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빛 물결의 첼로: 오프라 하노이의 비발디 첼로 협주곡/ 소나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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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용성 2012. 4. 22. 2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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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녀 첼리스트 오프라 하노이(Ofra Harnoy)를 기억하는가? 1965년 이스라엘에서 태어나 1971년 캐나다 토론토로 건너온 그녀는 여섯 살 때부터 첼로를 시작하였다. 첫 데뷔는 10살 때 오케스트라 협연무대였다고 하니 신동이었던 셈. 그녀를 가르친 사람 중에는 재클린 뒤프레나 피에르 푸르니에의 이름도 있다. 1982년 카네기홀 공연에서 찬사를 받은 그녀의 앞길은 탄탄대로였다. 각종 대회를 휩쓸며 연주와 녹음에서 주목받던 그녀를 RCA가 점찍었고, 그녀는 그곳에서 1987년부터 1990년대 초반에 걸쳐 상당수의 음반들을 냈다. 그러나 많은 이들의 기대와는 달리 불행히도 그녀는 거장으로는 성장하지 못했다(가족을 돌보기 위해서였다는 이야기도 있다). 미모로 얻은 명성일 뿐이라고 의심하던 사람들은, 그것 보라고 쾌재를 불렀을지도 모른다.

 

    나도 이런 편견이 있었는지, 아니면 그녀의 미모가 내 스타일은 아니어서인지이쪽 확률이 더 높다. 아름다운 외모에 혹하여 아키코 스와나니의 앨범을 샀으니까. 물론 후회하지 않는다. 스와나니의 탁월한 연주력이 워낙 출중하니까희한하게 그녀의 앨범은 한 장도 없었다. 2000년대 초반 키타옌코가 지휘하는 KBS교항악단과 함께(지금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우수한 연주력을 발휘한 시대였다) 생상스의 협주곡을 연주하던 모습이 유일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 키타옌코가 눈길 한 번 안 줄 정도로 박자가 제멋대로였다는 한 첼리스트의 혹평도 있었지만(오프라 하노이의 자유분방한 아고긱이나 루바토를 싫어하는 취향이었을 터), 난 그녀의 아름답고 윤기 있는 황금빛머리카락이 아니라, 프랑스 정신이 듬뿍 담긴 서정적 선율을 만들어가는 프레이징과 인토네이션, 자유롭게 흐르는 템포에 반하고 말았다. 그런데도 그녀의 음반 한 장 구하지 못한 채 세월은 흘러갔고, 기억도 희미해졌다.

 

    이제 오프라 하노이의 비발디 첼로협주곡/소나타 전집(이고르 오이스트라흐가 바이올린을 맡은 이중 협주곡도 수록되어 있다)을 들어보니 그녀가 정말 뛰어난 첼리스트였음을 다시 확인하게 된다. 오히려 화려한 미모 때문에 세월이 흐르면서 정당한 평가에서 손해를 본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들 정도이다. 이것은 대충 바로크 음악 흉내에 그치고마는 겉만 번지르르한 연주가 아니다. 그녀의 첼로 톤은 황금빛 물결처럼 아름답고 촉촉하게 귀에 스며들며, 프레이징은 유려하고 인토네이션은 자연스럽다. 지나침도 모자람도 없다. 역동적이면서 나른하고, 쾌활하지만 영롱한 슬픔을 간직하며, 본능의 즐거움에 충실하지만 거룩한 기도를 담고 있는 비발디 음악의 양면적 매력을 이처럼 잘 살려내기란 쉽지 않다. 진정 비발디의 혼에 다가간 연주이다. 폴 로빈슨(Paul Robinson. 일부는 리처드 스탬프)이 지휘하는 토론토 실내악단의 협연도 훌륭하다. 시대악기 연주단체처럼 가볍고 쾌활하기보다는, 적절한 무게와 풍요로움을 갖춰 오프라 하노이의 아름다운 황금빛 첼로에 자연스럽게 녹아든다. 정격연주는 아니지만, 치고 빠지며 통통 튀는 바로크적 감수성도 충만하다. 5장 전부(염가앨범이어서인지 북클릿이 아예 없다)를 내내 들어도 지루할 틈이 없다. 이 전집 하나만으로도 오프라 하노이는 명예의 전당에 들어갈 만하다.

   

    세상에 너무 늦은 일이란 없다. 다소 긴 침체기를 거쳤다고 해서, 1965년생인 오프라 하노이가 지금이라도 첼로의 거장이 되지말라는 법은 없다. 그녀가 거장 아니면 적어도 늘 사랑받는 첼리스트로 우리에게 가깝게 다가오기를 기대하여 본다. 그건 우리들에게도 큰 축복이 될 터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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