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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래스? : 사랑의 레시피(No Reservatio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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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용성 2010. 7. 2. 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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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런 음반을 영화음악으로 분류할 수 있을까. 14개의 트랙 중에 필립 글래스가 작곡한 곡은 단 2, 콘래드 포프의 곡까지 포함하여도 영화를 위하여 작곡된 오리지날 음악은 모두 3곡에 지나지 않는다. 연주시간도 짧다. 나머지 11곡은 파바로티, 테발디, 서덜랜드와 베르곤치, 칼레야가 부른 유명 오페라 아리아 7, 마이클 부블레, 파올로 콘테, 레이 젤라토, 리즈 페어가 부른 4곡의 노래로 채워져 있다. 결국 짧은 3곡의 영화음악을 제외하면 이미 존재하는 다른 인기 음원에서 빌려온 음악을 묶어 편집한 음반이다. 한 자리에 오레라 아리아, 라틴 재즈, , 그리고 짧은 영화음악을 함께 모아놓은 음반은 어떤 청취자들을 겨냥하는 것일까? 둘 중 하나일 것. 영화를 기분좋게 보고 그 분위기를 회상하려는 사람, 아니면 부담없이 이것저것 듣기 좋아하는 사람들. 그런 분들에게 이 음반은 추천할만 하다.

 

    20세기 최고의 성악가들이 뿜어내는 엄청난 카리스마, 마이클 부블레의 부드럽고 감미로운 음성이나 레이 젤라토의 흥겨움을 누가 마다하겠는가. 그러나 이 음반을 영화음악의 창의성이라는 관점에서 보자면 그리 성공적이지는 못하다고 생각한다. 필립 글래스가 이 영화의 음악을 맡았다고 나와 있지만, 도대체 그가 한 일은 무엇인가. 슬픈 느낌을 주는, 그래서 어딘가 영화의 분위기와는 동떨어진 듯한 짧은 두 곡만으로는 글래스의 음악세계조차 맛보기 어렵다. 오히려 포프의 첫 트랙이 영화가 주는 이미지와 잘 들어맞지만, 양적으로 너무 부족하다. 도대체 이 영화의 음악을 맡은 이로 필립 글래스의 이름이 굳이 올라와야 할 이유를 찾을 수가 없다.

 

    어차피 이런 종류의 음반은 다양한 분야의 일급 연주를 한 번에 모아 놓고 부담없이 즐기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고, 또 그것으로 충분하다. 그런데 이것을 진지하게 평가하라면, 부담스러워진다. 내가 높게 평가하는 영화음악가들은 이런 식으로 영화음악을 만들지는 않았다. 이 음반은 기존의 음원을 영화의 인지도와 결합하여 상업적으로 홍보하려는 발상으로 만들어진 것이 분명하다. 이런 영화에서 음악은 그저 배경, 아니 장식에 지나지 않는다. 감독이나 음악감독 모두 영화음악이 영화의 보이지 않는 차원을 보여주는 창조적 분야라는 의식이 없었을 것. 물론 상업적으로 이들의 선택은 안전하다. 나름 예술적인 고민을 한 결과 이런 식으로 음악을 구성하였다고 선해할 수도 있을 게다. 그리고 이런 것을 영화음악 음반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이 음반은 흠잡을 데가 없는 명품일 수도 있다. 당연하지 않은가. 일급 예술가들의 음원이 다수 동원되었으니! 그러나 진지한 영화음악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이런 음반은, 과장하여 표현하자면, 악몽이다. 라디오의 영화음악 시간을 이런 음반에 나오는 곡들이 장악하는 현실을 생각해보라. 파바로티나 테발디를 싫어할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마이클 부블레 같은 가수라면 나도 좋다. 그러나 이들을 함께 묶어 둔 이런 음반이 영화음악 음반의 주류가 되어가는 현실은 씁쓸하다. 맛배기로 두 세 곡 오리지날 스코어를 끼워 넣었다고 영화음악 앨범이 되는 것은 아니다. 그 자체로 충분히 즐길 수 있는 음반이지만, 비판하지 않을 수 없어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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