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이루어지지 않은 출발-리카르도 샤이의 쇼스타코비치 영화음악

CD

by 최용성 2012. 6. 8. 17:36

본문

    쇼스타코비치의 영화음악 중 가장 사랑받는 곡은 아마 가드플라이에 나온 로망스일 것. 점잖지 못한 뉘앙스를 주는 제목과는 달리 장중한 서곡과 서정적인 야상곡이 사람을 끌어당기는 9곡의 모음곡은 막심 쇼스타코비치/런던 심포니의 절판된(?) 음반(Collins 12062)으로 들을 수 있는데, 샤이의 음반에서는 로망스만 싣고 있다. 바이올린 독주의 감미로움에 치중하는 기존의 연주에 비교하면 밋밋하다 싶을 정도로 차분한, 오히려 그래서인지 고급스러운 분위기를 만들어낸다. ‘카운터플랜에 실린 노래는 UN 찬가로 널리 알려진 곡으로 스토코프스키의 편곡판도 유명하다. 트랙 11의 테레민 부분은 옹드 마르티노로 대체되어 연주되었다고 추측했는데, 로브스키(Fay Lovsky)가 실제 테레민을 연주하고 있다. ‘어리석은 생쥐 이야기’(너무 직역인가?)의 도입부는 쇼스타코비치의 유명한 경음악 타히트 트롯(Tea For Two)을 연상케 한다. ‘햄릿의 음악은 처음 도입부의 격렬한 질풍 이후에는 마치 발레 모음곡을 듣는 듯하다. 버너드 허만의 셰익스피어 영화음악 컬렉션(Decca)과는 선곡에서부터 차이가 있다. ‘위대한 시민의 장송행진곡은 원래 러시아의 혁명가로 제11번 교향곡의 제3악장에서 학살 당한 민중을 위한 장송곡으로 사용되었던, 바로 그 주제이다. 영화음악 분야에서는 광기 어린 서커스와 뒤틀린 멜랑콜리가 직설적으로 표현되는 쇼스타코비치의 특성이 다른 장르보다 날것 그대로 드러나고 있어 흥미진진하다.

 

 

    산만하게 들릴 수도 있는 오케스트레이션을 리카르도 샤이는 아주 질서정연하게 정리하면서도 극적인 맛을 잘 살려내고 있다. 세부를 잘 다듬으면서도 전체적인 구조를 보여주고, 과장되거나 모자람 없이, 모든 것을 생동감 있는 리듬 속에서 노래로 흐르게 만드는 샤이의 통합 능력은 여기서도 어김없이 발휘된다. 일급 오케스트라와 지휘자를 동원하기 어려운 평범한 영화음악 앨범들과는 달리, 풍성하고 윤기 흐르는 고급스러운 음향이 여유롭게 울려 퍼진다. 영화음악이지만 무용곡의 분위기도 강하다보니, 댄스 앨범, 재즈 앨범을 거쳐 필름 앨범의 '경음악' 3종 세트로 이어진 여정은 자연스러워 보인다. 그래서 오히려 아쉬움이 생긴다. 사실 쇼스타코비치의 매력적인 영화음악보다 더 훌륭한 영화음악들이 있다. 오래 전에 나온 이 앨범이 우리 시대 최고 지휘자 중 한 사람인 리카르도 샤이의 관심 영역을 더 위대한 영화음악 세계로도 넓혀가게 하는 출발점이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관련글 더보기

댓글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