듣고 싶은 음악을 제대로 들을 수 없던 시절이 있었다. 그런 척박한 환경을 바꾼 일등공신은 아마도 성음(成音)이라는 음반회사일 것이다. 성음은 1970년대 초반부터 폴리그램(유니버셜 뮤직의 前身. 당시 데카, 필립스, 도이체 그라모폰 등이 소속되어 있었다) 산하의 클래식 음반들을 정식 라이센스로 발매하기 시작하였다. 그 제1호 음반이 정경화와 프레빈/런던 심포니가 협연한 차이코프스키․시벨리우스 협주곡집(Decca)이었던 것은 여러모로 의미심장한 사건이었다. 연약한(?) 한국인 처녀가 세계적인 클래식 레이블 데카의 음반표지를 장식하는 스타로 떠올랐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가난했던 시절 우리들은 한껏 자부심을 가질만했으니까. 그러니 정경화의 첫 음반이 경외의 대상이 된 것은 당연한 수순. 이후 정경화의 행보는 늘 찬탄과 열광을 불러 일으켰다. 그렇기에 아주 제한된 범위의 곡과 연주자의 음반만이 라이센스로 발매될 수 있었던 그 어려운 시절에도 정경화의 음반만은 늘 예외일 수 있었던 것. 정녕 정경화는 누군가의 표현처럼 ‘바이올린의 여제(女帝)’ 또는 ‘여신(女神)’이었다.
시간은 흐르고 모든 것은 변한다. 아무리 찬란하던 신화도 언젠가는 퇴색하게 마련. 그녀의 음반들에 세월의 흔적이 쌓이고, 여신에 대한 기억도 아련한 추억 너머로 사라지는 듯하였다. 그러나 그게 아니었다. 정경화의 음반들을 다시 꺼내 들으면서 새삼 깨닫는다. 그녀야말로 진정 여신이고, 불멸의 전당을 봉헌 받을 자격이 있는 진짜 거장이라는 것을.
정경화가 만드는 음악은 관능적이지 않으나 여성스럽고 섬세하다. 극도로 예민하여 쉽게 상처받을지도 모를 감성은 내면 깊숙한 곳에서 미묘하게 동요한다. 아름답지만 연약한 이 내적인 떨림을 뚫고 그 무엇에도 지지 않으려는 듯이 강인하게 비상(飛上)하는 의지가 열정적으로 분출된다. 내향과 외향의 대립에서 팽팽한 긴장이 생겨난다. 찰나의 순간에도 많은 것을 담아내면서도 동시에 과감히 비울 줄 아는 절제, 순간순간 극한까지 이르는 정열을 보여주되 조화와 균형을 잃지 않고 자연스럽게 전체에 이르는 집중력과 지적 통찰력, 들어갈 때와 나갈 때를 아는 동양적인 지혜, 아름다움에 대한 본능적 직관, 모든 것을 표현해낼 수 있는 기교를 지녔으되 그에 함몰되지 않는 높은 품격…이처럼 다양한 특징이 정경화의 바이올린에 녹아들어 깊고 큰 아우라(aura. 氣)를 형성한다.
그녀의 이런 개성이 가장 잘 맞는 분야는 불안정한 시대상을 반영하고 있는 20세기 협주곡들일 것이다. 바르토크, 프로코피예프, 월튼, 스트라빈스키, 베르크에 이르기까지 단 하나도 명연이 아닌 것이 없다. 이들 음악에서 정경화는 달콤하면서도 쓰디쓴 음색으로 요동치는 현대인의 불안한 서정을 절절하고도 긴박감 있게 그려낸다. 그녀가 브리튼이나 바버, 로자, 코른골트, 하차투리안 등등과 같은 더 많은 걸작 현대 협주곡들을 녹음하지 않은 것은 큰 손실인 셈.
정경화는 낭만주의 협주곡에서도 위대한 업적을 이루었다. 3종의 음반이 나와 있는 차이코프스키(내 취향으로는 프레빈과 협연한 첫 녹음이 가장 완성도 높은 것같다), 시벨리우스, 부르흐, 멘델스존, 생상, 비외탕, 엘가 등등을 들어보라. 과장하지 않으면서도 뜨겁게 타올라 절정에 이르는 정경화의 예술혼은, 진부하게 들릴 수도 있는 이들 명곡에 놀라울 정도로 신선한 생명력을 불어넣는다. 그녀의 베토벤(이 곡은 텐슈테트와 EMI에서 녹음한 두 번째 녹음이 더 원숙하고 아름다운 명연이라고 생각한다) 첫 녹음도, 키릴 콘드라신이 이끄는 관현악이 다소 고지식하기는 하지만, 그녀만의 매력이 충분히 발휘된 호연이다.
음반 작업에 늘 엄격한 기준을 적용한 탓인지 아쉽게도 정경화는 실내악이나 기악곡 분야에서는 양적으로 많은 성과를 내지 못했다. 그렇지만 지메르만과 함께한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와 오토리노 레스피기의 소나타 앨범(DG), 루푸와 협연한 프랑크와 라벨 소나타 앨범(DECCA) 등은 다른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을 명연주이다. <콘 아모레>(Con Amore)라는 타이틀을 내건 사랑스런 소품집도 빼놓을 수 없는 명반이다. 어쩌면 소품 연주야말로 거장과 그저 잘하는 연주자를 구분하는 척도가 될지도 모른다. 정경화가 들려주는 소품의 세계는 진정한 거장만이 도달할 수 있는 절대적인 아름다움 그 자체로 이어진다. 어디서 이처럼 연주자와 바이올린이 일체가 되어 자연스럽게 흐르는 연주를 들을 수 있겠는가.
진정 정경화의 예술은 세대를 넘어 계속 재발견되어야 할 불멸의 가치를 지니고 있다. 그녀가 심기일전하여 새로운 녹음에 도전하기를 충심으로 기원하면서, ‘사랑의 인사’를 드리고 싶다. 고맙습니다, 정경화 선생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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