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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아라비안 나이트로-로자(Rozsa): 신바드의 황금항해

Miklós Rózsa

by 최용성 2012. 6. 5. 1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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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클로시 로자의 1973년 작품 <신바드의 황금항해>는 젊고 경쾌하며 시적이었던 <바그다드의 도둑>과는 달리 어둡고 무겁다. 로자의 다른 작품들에 비하여 서정적이고 따뜻한 선율이 별로 많이 들리지 않는 것은, 레이 해리하우젠의 정교한 특수효과로 만들어진 영화의 성격에 우선 기인하겠지만, 후기의 작풍이 자연스럽게 반영된 측면도 무시할 수 없으리라.

 

    <바그다드의 도둑>이나 <정글북>과 같은 초기 동양적 환상풍의 음악보다는 <잃어버린 주말>(트랙 11), <이중배상>(트랙 7의 마지막 부분), <붉은 집>(The Red House. 음반의 트랙 4, 9의 2:10 부분)과 같은 느와르 음악의 특징이 더 많이 나타나는 것은 뜻밖이다. “베를리오즈가 소재에 따라 늘 스타일을 바꾼다고 자신했으나 실제로는 늘 그의 스타일을 벗어나지 못했듯이 나도 마찬가지일 것”이라고 로자 자신이 성찰한 말이 떠오른다. 느와르-오리엔탈라고 부를만한 이 음악에는 바로 귀를 잡아끄는 선율이 많지 않지만, 들을수록 거장의 손길이 곳곳에 느껴지는 독창적인 매력이 있다. 특히 자유자재로 관현악의 다양한 기법을 구사하는 솜씨는 일품이다. 

 

 

    전주곡에서 나오는 아랍 풍의 멋진 신바드 테마는 항해자들이 미지의 모험을 위하여 떠나는 느낌을 바로 전해준다. 트랙 2는 신서사이저가 들려주는 신비롭고 위압적인 음향이 중심이다. 트랙 5는 오보에가 연주하는 목가적이고 동양적인 주제인데, 그 속에서 뜻밖에도 헝가리 농민요가 들려온다. 트랙 8의 0:27에서 사랑의 테마가 전개되면서 간간히 신바드의 테마를 교차시키는 것은 ‘아이반호’(Ivanhoe) 중 ‘레베카의 사랑’(INTRADA MAF 7055D의 트랙 11)에서도 볼 수 있었던 방법이다. 트랙 9의 1:03부터 전개되는 큰북과 실로폰, 목관악기들 사이에 대화하는 듯이 전개되는 악상은 독특하고 흥미로운 착상이다. 트랙 12에서는 2:35부터 현악기가 특이한 음향효과를 만들어내는 부분이 재미있다.

 

    하일라이트는 단연 트랙 14이다. 칼리(팔이 6개인 인도의 여신)와 싸우는 장면[1:49]에서 격렬한 리듬을 타고도 노래가 흐르는 것은 로자만이 보여줄 수 있는 세계가 아닐까. 그 효과는 압도적이다. 이어 나오는 경쾌한 인도풍의 선율[4:43]은 생명력과 위트가 넘친다. 트랙 15는 ‘운명의 분수’라는 제목대로 레스피기의 <로마의 분수>를 연상시키는 관현악법이 로자의 개성 강한 선율 속에 어우러진다. 트랙 18에서는 신바드의 주제를 희망차게 변주하다가 장대하게 마무리된다.

 

    음반의 북클릿에는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실려있다. 제작자는 당시 유행에 따라 팝 선율을 영화의 메인 타이틀에 넣어달라고 요구하여 왔다.로자는 자신의 전주곡과 제작자가 원하는 팝튠을 차례로 연주해볼 터이니 그때 직접 듣고 선택하라고 제안하였다. 이탈리아의 한 스튜디오에서 두 버전의 연주가 모두 끝나는 순간 제작자는 “당신이 옳았소”라면서 백기를 들었다. 다시 한 번, 지니는 로자의 편이었던 것. 오케스트라 단원들은 로자가 실로 오랫만에 영화에 음악을 찾아주었다며 축하파티를 열어 주었다고 한다.

 

    1974년 컬럼비아 레코드에서 나왔던 사운드트랙 음반(재녹음)을 1998년 복원하였는데, 불행히도 그 결과는 만족스럽지 않다. 1973년의 스테레오 녹음임에도 소리의 선명함이 현저히 떨어지고 다이나믹 레인지의 폭이 좁다(Pro Musica Sana 57에 의하면 오리지날 마스터 테이프가 소실되어 LP를 복원하였다고 한다). 심지어 어떤 부분에서는 속도도 늘어지는 느낌이다. 악기의 음색, 다이나믹이 강조되어야 제 맛이 살아나는 이러한 곡에서 흐리멍텅한 소리가 얼마나 나쁜 영향을 미칠지는 더 말할 필요가 없겠다. 마치 빛바랜 그림을 보는 듯하다.  로마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울림이 최상급이라고 말하기는 어렵고 규모도 다소 작아 큰 스케일을 맛볼 수는 없지만, 연주는 그런대로 괜찮은 수준이어서 녹음에 대한 아쉬움은 더 크다. 이상한 점은 트랙 12부터 마지막 트랙 18까지 스테레오의 좌우가 바뀌었다는 것이다. 제작자들의 무성의를 보는 듯하다. 

 

    이런 문제점을 의식했는지, 아니면 전곡에 대한 강박관념 때문인지 모르겠으나 같은 레이블에서 이 음반의 스테레오 음원에 더하여 영화에 직접 사용된 모노 음원을 결합한 2장으로 된 신보(PROPXCD167)를 새로 내었다. 아직 들어보지 못하여 스테레오 음원이 개선되었는지 여부를 알 수는 없지만, 절판되기 전에 구해볼 생각이다.

 

    비교음반으로는 전주곡, 칼리와의 결투, 피날레 3곡을 하나로 묶은 케네스 얼윈이 지휘한 프라하 필하머닉의 음반(◉SILVA SSD 1056 The Epic Film Music of Mkls Rzsa)이 있다. 프라하 필하머닉의 수준이 당시에는 일류가 아님에도 최신 디지탈 녹음에 힘입어 관현악의 화려한 음색과 다이나믹이 잘 살아나는 극적인 연주이다.

 

  Miklos Rozsa,The Golden Voyage Of Sinbad,  The Rome Symphony Orchestra/ Miklos Rozsa(cond.), PROMETHEUS PCD 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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