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로 가장 많이 만들어진 소설 속 인물은 누굴까? 통계야 늘 변하기 마련이니 지금도 정확한 것인지 알 수는 없지만, 셜록 홈즈라는 것. 19세기말부터 20세기 초 제국주의 영국의 수도이자 세계의 중심이던 런던. 그곳 베이커 거리 221B에 살았던 코카인 중독자이자 편벽 성향이 강한 괴팍한 독신 사립탐정에게, 시대와 장소를 뛰어넘어, 사람들이 열광한 이유는 무엇일까? 여러 가지 답이 가능하겠지만, 불완전하고 결핍 많은 한 천재와 한결같은 조력자인 평범한 의사가 만들어내는 관계 속에서 근대인의 전형을 봄과 동시에고 세대를 뛰어 넘는 공감대를 찾았기 때문일 것이고 답할 수도 있을 것같다.
스티븐 스필버그가 제작하고 배리 레빈슨이 연출한 <영 셜록 홈즈>(우리나라에서는 ‘피라미드의 공포’라는 아시아판 제목으로 대한극장에서 70밀리로 개봉하였다)는 홈즈와 왓슨의 학창 시절을 배경으로, 헌팅캡과 망토 달린 코트, 파이프를 포함하여 홈즈의 스타일은 어떻게 형성되었는지(실은 삽화가 시드니 파젯의 작품이라는 것이 정설), 홈즈는 왜 평생 여성을 멀리 하고 독신으로 살았는지, 홈즈의 숙적 모리아티 교수가 어떻게 탄생하였는지를 원작과는 상관없이 흥미진진하게 다루고 있다. 특수촬영 효과를 위한 설정과 인디아나 존스 2편이 어설프게 중첩되는 듯한 오락 모험활극이다 보니 심리적 깊이나 홈즈 이야기의 역사적 맥락까지 크게 기대할 수는 없지만, 셜록 홈즈라는 인물이 뿜어내는 매력에 매혹된 사람들에게는 한 대목, 한 대목이 보석 같은 영화이다.
브루스 브로튼(Bruce Broughton)이 작곡한 사운드트랙 음반은 1985년에 발매되었다가 절판된 희귀앨범이다. 거기 실린 음악은 정통 관현악 영화음악이 무엇인지 확실히 보여주는 걸작이다. 절판된 이후 애호가들의 최우선 수집목록 몇 손가락 안에 꼽힐 정도로 구하기 힘든 앨범이었는데, 전곡을 2장에 담은 1,500 세트 한정판 CD도 발매되자마자 절판되었다(못구했다!).
브로튼은 웨스턴 풍의 경쾌한 리듬과 마차 소리를 깔면서 피콜로의 주도로 신비로우면서도 가볍고 동적인 주제를 펼쳐 보인다. 거기에 엘가 풍의 선율이 따뜻하게 흐르며 빅토리아 왕조 시대의 고상한 분위기를 살려낸다. 미국과 영국의 혼이 적절하게 배합된 브로튼의 음악은 밝고 건강하며 무엇보다 젊다. 물론 세기의 명탐정을 다룬 영화이다 보니 어두운 세계도 빠질 수 없다. 특히 라메테프를 숭배하는 사교(邪敎) 집단의 의식(儀式) 음악에서 브로은 같은 리듬을 반복하며 다이나믹을 점점 고조시켜 극적 긴장을 높이고 있다. 이 부분 합창곡을 듣다 보면 오르프의 ‘운명의 여신이여’는 물론이고, 이를 모방하면서도 또 다른 멋진 세계를 창조한 베이질 폴레도우리스의 <코난 더 바바리언>의 음악이 떠오르지 않을 수 없다. 영화음악 오케스트라로는 세계 최고 수준이라고 평가 받는 신포니아 오브 런던의 세련되고 정교한 연주도 멋지다. 하루 빨리 다시 발매되기를 기대한다.
셜록 홈즈 영화가 다양하다 보니 그 음악들만 모아서 음반을 낼 수도 있지 않을까? 이런 아이디어를 실현한 것이 바레즈 사 라방드 레이블이 만든 <셜록 홈즈: 베이커 거리 221B의 클래식 테마> 앨범이다. 콘트라베이스가 빠져 있는 소규모 팝 오케스트라를 위한 가벼운 편곡이어서 로자의 <셜록 홈즈의 사생활> 판타지에서는 그 중후한 품격과 애절한 멜랑콜리를 진하게 느낄 수 없다. 그러나 여러 작곡가들이 그려낸 셜록 홈즈의 모습이 담겨 있는 점만으로도 흥미진진한 기획이다. 베이질 래스본이 나온 고전 셜록 홈즈의 테마를 들을 수 있는 기회가 어디 흔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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