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정된 음표를 소리로 울리기 전, 악보는 단지 가능성일 뿐이다. 그 가능성을 현실화하려면 해석 그리고 연주가 필요하다. 주관적 해석 없이 악보를 충실히 재현하여야 한다는 주장도 있지만, 그것조차 또 다른 해석적 관점이다. 같은 곡이라도 지휘자, 연주자의 수만큼 많은 해석과․연주가 존재하는 것도 그 때문. 그래서 같은 악보에서 출발하더라도 실제 울리는 음악은 천양지차가 된다. 이처럼 다양한 해석의 가능성이 열려 있는 것은 음악애호가들이나 연주자들 모두에게 큰 축복이다.
그런데 이를 정면으로 거부하는 사람들도 있다. 바로 영화음악 ‘사운드트랙’ 순수주의자들. 그들은 영화음악에서 오리지널 사운드트랙을 능가하는 해석과 연주는 있을 수 없거나 심지어 불필요하다고 확신한다. 심지어 작곡가가 음악적 완성도를 높이기 위하여 개정한 악보도 부정한다. 당연히 그들에게 영화음악을 새로이 해석하고 연주한 음반은 낭비이다. 물론 예외를 인정하기도 한다. 사운드트랙 음반이 나와 있지 않거나, 사운드트랙의 녹음 또는 연주가 너무(!) 조악한 경우, 사운드트랙에서 들린 템포와 리듬, 음향에 최대한 가깝게 재현한 전곡 녹음인 경우 등이 그렇다. 나머지 경우에는 대단한 명연주가 나와도 새 녹음에 눈길을 주지도 않는다.
물론 이것은 개인 취향의 영역일 수도 있다. 문제는 그들이 사운드트랙이라는 신성불가침의 교의를 내세워 이것과 다른 해석의 새로운 영화음악 음반이 나올 때마다 이를 과도하게 공격하고 비난하여 비평을 왜곡시키는 데에 있다. 결과적으로 영화음악 애호가 일부가, 영화음악이 독자적인 예술음악 영역으로 확장되고 인정받는 것을 방해하여 클래식 애호가들에게 편견을 심어주는 데에 기여하는 역설이 생기고 만다. 반론은 단순하다. 영화음악은 무엇보다 '음악'이라는 것, 음악은 해석을 필요로 한다는 것. 왜 우리가 로자의 <벤허> 같은 걸작을 57년이 넘은 낡은 사운드트랙으로만 들어야 한단 말인가?
미클로시 로자의 영화음악 중 4편의 모음곡을 담은 샨도스 음반이 2014년에 나왔을 때에―국내에는 수입되지 않은 것으로 안다―일부 영미권 영화음악 애호가들의 반응이 꼭 그랬다. 새롭게 연주회용으로 구성하여 출판한 악보를 사용한 음반이니 더 그랬을 것. 예를 들어 이런 식이다. '<사하라> 모음곡을 제외하고 나머지 모음곡은 이미 다른 음반이 나와 있고 전곡도 아니니 쓸모없다, 연주가 사운드트랙과 다르다, 다이나믹하지 않다' 등등. 결론부터 말하면, 다 헛소리이다. 샨도스의 로자 영화음악 음반은 지휘자 루몬 감바의 섬세하고 치열한 해석과 BBC 필하모닉의 훌륭한 연주력, 그리고 샨도스의 고급스러운 하이엔드 음향이 삼위일체를 이룬 대단히 훌륭한 음반이다. 셈여림을 미세 수준에서까지 예민하게 조절하는 감바에게 다이나믹하지 않다는 지적이 말이 되는가. 과도하게 힘이 들어가고 음량이 크고 세게 들리는 것을 다이나믹하다고 오해한 난센스이다.
음반의 처음을 여는 모음곡은, 로자가 런던 생활을 마치고 할리우드에 정착하는 계기가 된 작품인 <바그다드의 도둑>이다. 로자 자신이 지휘한 뉘른베르크 심포니의 모음곡 연주(콜로세움)에 실린 짧은 ‘왕의 팡파르’는 빠진 대신 ‘술탄의 장난감’이 들어가 모두 7개 악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감바는 로자의 초기 걸작 속에 얼마나 많은 레이어가 중층적으로 깔려 있고 그 결과 곡의 밀도가 높은지 놀라울 정도로 세밀하게 보여준다. 아울러 박진감 있게 밀고 당기며 음악의 서사적 성격과 서정적 성격, 그리고 아랍적 특성을 세밀하게 조율시킨다. 아라비안나이트를 다룬 음악답게 테크니컬러의 색채감을 만들어내는 능력이 특히 탁월하다. 예를 들어 ‘공주의 행렬’이나 ‘은처녀의 춤’에서 시시각각 미묘하게 변해가는 장면을 음악으로 구현해내는 절묘한 솜씨를 보면 감탄이 절로 나온다. 로자의 자작자연도 이루지 못한 경지이다. 어떤 연주와 비교하더라도 해석은 물론이고 연주로도 훌쩍 앞선다. 유일한 불만을 지적하자면, ‘술탄의 장난감’(트랙 4)과 ‘하늘을 나는 말의 갤롭’(트랙 5)을 아타카로 연주하는 것이 효과적이었을 터인데 상당한 휴지를 둔 점 하나 뿐일 것.
30분 정도 연주되는 로자의 <정글북> 모음곡은 세계 최초의 영화음악 음반으로 기록되고 있다. 해설과 관현악을 위한 연주회용 모음곡―모음곡이라고는 하지만, 실제로는 하나의 곡처럼 진행된다―으로 악보가 출판되었고, 로자가 두 차례에 걸쳐 해설을 포함한 자작자연을 모노 녹음으로 남겼다. CD 시대에는 클라우스페터 자이벨이 뉘른베르크 심포니를 지휘한 연주가―처음에는 독일어 해설이 들어간 버전으로, 나중에는 해설이 빠진 버전으로―나왔고 현재는 해설 없는 버전이 로자 자작자연인 <바그다드의 도둑>과 커플링된 음반(콜로세움)으로 남아 있다. 내가 들어본 것은 로자의 첫 녹음과 자이벨인데, 어느 것도 루몬 감바가 지휘한 BBC 필하모닉의 적수가 되지 못한다. 감바는 음을 하나하나 조탁하여 관현악의 빛깔을 다채롭게 만들어 냈을 뿐만 아니라 프레이징과 리듬, 템포에 밀고 당기는 활기를 불어넣어 인도의 정글 속에 들어간 것처럼 이국적이면서도 화려한 세계를 만들어내고 있다. 동물들을 표현하는 대목에서 독주악기를 근접 녹음한 다른 음반에 비하여 콘서트홀의 자연스러운 음향대로 수록한 접근법에 관하여는 호불호가 갈릴 여지도 있을 것이지만, 감바의 접근이 훨씬 고급스럽고 순음악적 향기가 진하다. 여하튼 토니 토마스의 말처럼 <정글북>과 <바그다드의 도둑> 단 두 편의 영화음악만 남겼어도 로자의 이름이 영화음악사에 영원히 남았을 것임을 새삼 느끼게 해주는 명연주이다. 다른 음반과 달리 트랙을 세밀하게 구분하여 곡 전체의 내러티브를 따라갈 수 있게 한 점도 훌륭하다. 다만 해설과 ‘자장가’의 독창을 함께 듣고 싶으면 로자가 지휘한 첫 녹음을 구해야 한다.
요즘으로 치면 <퓨리>와 유사한 전쟁영화 <사하라>(우리말 제목은 <사하라 전차대>)를 위한 음악은 크리스토퍼 파머가 8분 정도 분량으로 재구성한 곡이다. 찰스 거하트가 내셔널 필하모닉을 지휘한 축약 버전이 ‘험프리 보가트를 위한 고전영화음악’ 음반(RCA)에 실려 있는데, 이것도 세 도막 형식으로 이루어져 나름 독자적인 매력이 있는 버전이다. 물론 감바의 음반에 실린 버전이 원곡의 다채로운 분위기를 다양하게 들려준다.
공교롭게도 비슷한 시기에 인트라다 레이블에서 나온 <하프 문 거리의 사나이> 음반에도 앨런 윌슨이 로열 스카티시 내셔널 오케스트라를 지휘한 연주가 수록되어 있어 비교된다. 윌슨과 스코틀랜드 악단도 잘 했지만 곡의 뉘앙스를 그야말로 변화무쌍하게 구현해내는 감바에 비하면 좀 모범생 같다. 마지막으로 실린 곡은 로자의 필생의 걸작 <벤허> 모음곡 6곡이다. 무슨 설명이 필요하랴. 지금까지 나온 부분적인 어떤 연주도 로자의 자작자연―사운드트랙 버전과 내셔널 필하모닉 데카 버전 모두―이나, 카를로 사비나가 로마 교향악단을 지휘한 기백 넘치는 연주를 넘어서지 못했다.
감바는? 힘을 간직하면서도 섬세하고 화려하고 정교하다. 무엇보다 세련된 기품이 있다. 대단히 완성도 높은 연주이고, 연주의 완성도는 때때로 로자의 자작자연이나 사비나의 연주를 넘어서기도 한다. 그래도 굳이 아쉬운 점을 말하자면―<벤허>에 대한 내 기대가 너무 큰 탓도 있다―우선 전주곡에서 다소 빈약한 벨소리, 벤허의 테마가 진행될 때 트럼펫이 처음 등장하면서 음표는 제대로 연주하지만 마지막 음을 시원스럽게 끝까지 뻗어가지 못하는 호흡의 한계 같은 부분을 지적하고 싶다. ‘사랑의 테마’에서는 사비나의 소박하고 격정적인 애틋함을, ‘노 젓는 갤리선의 노예들’에서는 로자가 내셔널 필하모닉을 지휘한 데카 버전의 압도적 박력을 약간의 차이로 뛰어넘지는 못한다. '어머니의 사랑'은 정서적으로 다소 억제되어 있다. 이런 지적을 해석이나 연주가 떨어진다는 말로 오해하지 않으시기 바란다. 정반대이다. 감바와 BBC 필하모닉이 연주하는 '전주곡'이나 ‘사랑의 테마’, ‘노 젓는 갤리선의 노예들’ 모두 대단히 훌륭한 연주들이다. 좌절에서 희망으로 변화하는 '불타는 사막'도 아주 훌륭하게 극적 흐름을 살려냈다. 음반을 마무리하는 ‘전차들의 행진’은 어떤 연주보다도 빠르게 질주하지만 서두르는 기색 없이 박진감 넘친다.
2015년 발트뷔네 콘서트에서 래틀이 지휘한 베를린 필하모닉은 할리우드 영화음악을 주 프로그램으로 삼았는데, 거기에서 로자의 <벤허> 중 전주곡, 전차행진 두 곡이 연주되었다. 이 연주를 보기 위하여 디지털 콘서트홀에도 가입하였을 정도로 기대가 컸다. 그러나 불행히도 세계최고의 교향악단과 지휘자라도 이 곡을 제대로 해석하여 연주하지 못할 수 있다는 뼈아픈 진실과 마주하였을 뿐. 놀랍게도 래틀과 베를린 필하모닉이 헤매고 있었다. 중후하고 고급스러운 톤은 그대로이지만, 앙상블은 겉돌고 지휘자는 음악의 맥을 짚어내지 못하고 있었다. 지휘자나 악단 모두 영화음악을 우습게, 아니면 가벼이 본 탓이라고 나는 짐작한다.
그 연주와 비교하면, 감바와 BBC 필하모닉의 연주는 대단한 명연이다. 감바는 섬세하고 이지적이면서도 필요할 때마다 뜨거운 에너지를 불태우는 지휘자이지만, 이 음반에서는 오히려 감정이 격앙되지 않도록 스스로 절제하며 아주 섬세하게 악구들을 조탁하는 이지적 해석에 더 공을 들이고 있다. 이것은 영화음악에 대한 일반적인 시각을 뛰어넘는 역발상의 접근법인데, 그 결과 대단히 고급스럽고 품위 있으면서도 곡의 감정선이 자연스럽게 흐르는, 최고의 관현악 영화음악 음반이 탄생하였다. 감바의 멋진 해석에 찰떡궁합을 보이는 BBC 필하모닉의 멋진 무대를 자연스럽게 잡아낸 샨도스의 녹음은 인위적인 클로즈업이나 과장이 없다. 좋은 오디오 시스템에서 음량을 마음껏 올릴수록 더 진가가 드러나는 뛰어난 녹음이다.
영화음악도 결국 해석이 필요한 ‘음악’이고, 그 해석의 힘이 음악을 얼마나 다채롭고 아름답게 만드는지 보여주는 훌륭한 음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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