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다보면 간혹 믿기 어려운 일도 일어난다. 그것이 뜻밖의 선물일 때 삶은 더 즐거워진다. 1977년 엘머 번스타인이 로열 필하모닉을 지휘한 LP 앨범 발매 이후 39년 만에 미클로시 로자의 <바그다드의 도둑> 세계최초 전곡 녹음이 2016년 11월에 나왔다. 영화가 개봉된 1940년으로부터는 76년의 세월이 흘렀다. 엄청난 세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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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봉 영화도 아니고, 일반 음악애호가들의 관심도 없는 상태에서 극소수 애호가들만이 바라던, 그것도 엄청난 예산이 소요되는 프로젝트를 실현한 이들을―특히 프로메테우스 레이블의 룩 반 드 벤(Luc Van de Ven). 같은 지휘자와 연주자, 제작진이 만든 앨범이라도 희한하게도 그가 참여한 프로메테우스 상호를 단 앨범들이 훨씬 더 완성도가 높다―존경하고 사랑하지 않을 수가 없다. 사업의 손실을 감수하겠다는 마음 없이는 이루어질 수 없으니까. 그야말로 뜨거운 애정의 산물이다. 그러니 어느 정도 흠이 있더라도 좋게 봐줘야 하겠다고 생각하였지만, 놀랍게도 전혀 그럴 필요가 없다. 정말 훌륭하다. 악보 복원에서 연주와 녹음, 그리고 북클릿까지 망라하여 음반 자체의 절대적 완성도가 대단히 높다. 2016년 나온 올해의 음반 한 장을 고르라고 하면 단연 이 음반이다. 듣는 순간 사랑하지 않을 수 없을 만큼 매혹적이다.
<바그다드의 도둑>에서 로자가 보여주는 세계는 림스키-코르사코프의 <세헤라자데>보다 더 다양하고 쾌활하며 즐거운 아라비안 나이트이다. 물론 여기에도 그 뒤의 로자가 보여주는 격렬한 긴장이나 어둠의 세계가 존재하지만, 전체적인 분위기가 심각하지 않고 신명난다. 좋은 의미에서 가볍고 생동감 넘치며 젊다. 중후기 로자가 들려주는 음악과는 확연히 구별된다. 전혀 다른 소재이지만, 어쩐지 차이코프스키의 <호두까기 인형>에 비유될만한 작품이고, 아라비안 나이트 음악인데 또 어쩐지 크리스마스 시즌에 잘 맞는다.
엘머 번스타인의 앨범에서는 세 곡의 독창을 들을 수 있었다. 그런데 닉 레인의 이번 음반을 통하여 무려 8곡이나 되는―합창과 함께 하는 경우를 포함하여―독창곡이 존재함을 알고 깜짝 놀랐다. 그 대부분이 영화에 실리지 못하였지만 다행히 로자가 정성들여 쓴 악보가 남아 있었고 신보에서는 이를 모두 복원하여 연주하였다. 특히 성인 합창에 더하여 소년 합창단까지 등장하는 ‘시장’(첫째 음반의 트랙 6)은, 9분에 조금 못 미칠 정도로 길지만, 대단히 유쾌한 장면이다. 공주가 부르는 ‘왈츠 송’(첫째 음반의 트랙 16)은 디즈니 애니메이션에 바로 삽입되어도 될 정도로 예쁜 음악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로자 스타일과 다른 면모를 보여줘 흥미진진하다. 심지어 램프의 요정 지니도 노래를 부른다. 로자가 오페라나 뮤지컬을 작곡하였으면 대단한 작품들이 탄생하지 않았을까 상상해볼 정도이다.
▤ Silvermade Dane 녹음 연주 영상 https://www.youtube.com/watch?v=niqufxTr6oQ
두 번째 음반의 후반에는 독창곡의 악기 버전, 몇 곡의 대체버전(특히 ‘하늘을 나는 말’의 두 가지 대체 버전은 흥미진진하다), <소돔과 고모라> 음반처럼 마지막을 마무리하는 바이올린과 오케스트라를 위한 ‘공주의 사랑’ 편곡버전이 실려 있어 음반의 가치를 더 높이고 있다. 처음부터 마지막 트랙까지 정말 즐겁고 흥미진진하다. 로자가 얼마나 훌륭한 작곡가인지 감탄을 연발할 정도로 이 초기 작품에서부터 음 소재를 다루어가는 방식에서 다채로운 빛깔이 반짝인다. 로자가 <정글북>과 <바그다드의 도둑> 두 편만 작곡하였더라도 영화음악사에 남았을 것이라는 토니 토마스의 의견은 전적으로 옳다. 이것이야말로 거장이 쓴 진짜 영화음악이다.
▤ '공주의 사랑' 녹음연주 동영상 https://www.youtube.com/watch?v=aMV66ukGkCU
닉 레인과 프라하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 합창단, 영국에서 따로 녹음한 소년합창은 절묘하게 어우러져 정상급의 연주를 들려주며, 독창자들은 때로는 뮤지컬처럼 때로는 오페레타처럼 드라마틱한 표현으로 신명나게 정성을 다하여 열창한다. 훌륭하다. 훌륭하다. 다만 내 취향으로는, 메인 타이틀에 이어 나오는 ‘뱃사람의 노래’만은 엘머 번스타인 음반에서 열창한 바리톤 브루스 옥스톤의 오페라 풍 열창이 조금 더 끌린다는 점 정도를 지적할 수 있겠다. 새 음반에서는 영화 사운드트랙과 분위기가 비슷하게 뮤지컬스러운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데, 물론 이건 취향 문제이다. 그야말로 처음부터 끝까지 기립박수를 보내고 싶은 연주이다. 늘 그렇듯이 녹음도 대단히 선명하고 강력한 에너지가 느껴질 정도로 훌륭하다.
지금까지, 최근 새로 나온 <벤허>까지 포함하여, 닉 레인과 프라하 필하모닉이 만들어낸 앨범 중 가장 많은 정성이 들어가고 완성도가 높은 앨범이다. 듣고 있으면 그런 노력이 느껴지고 음반을 만든 사람들에게 경의를 표하고 싶은 마음마저 든다. 꿈을 꾸는 사람들이 놀라운 기적을 만들었다. 부디 그 기적의 시간에 함께 하시기를.
▤ 활기찬 Market of Basra https://www.youtube.com/watch?v=YNQaZu1o0B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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