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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자: 소돔과 고모라

Miklós Rózsa

by 최용성 2017. 2. 5. 1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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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꿈꾸는 능력을 잃은 채 현실에 순응하며 하루하루 살아가는 우리는, 당장 이루지 못할 꿈을 꾸는 사람을 비웃고는 한다. 그러나 누군가 꿈을 꾸면, 그것은 언젠가 실현될 지도 모른다. 그 꿈을 실현하는 사람이 꼭 나이고 지금 당장일 필요가 없다는 점만 받아들이면 된다. 로자의 마지막 성서사극 음악인 <소돔과 고모라>의 새로운 전곡 녹음을 나는 꿈꾸어왔다. 로자파일 중 상당수가 그랬을 것이다. 그러나 <엘시드>, <왕중왕>, <쿼바디스>처럼 사극영화 장르에 확고한 위치를 차지한 명화들과는 달리 <소돔과 고모라>는 거의 잊혀진 영화이다. 그것도 저주받은 걸작이 아니라 영화 자체가 졸작이라고 혹평을 받았기에 잊혀진 영화이다. 게다가 완전하지는 않지만 로자가 지휘한 사운드트랙이 스테레오 녹음으로 남아 있다. 이런 영화음악을 악보까지 복원하여 녹음한다고 누가 사주기나 할까? 아니, 알아주기라도 할까? 그러니 새로운 전곡녹음이 나오기 불가능하다고 예측하는 것이 더 현명해 보였다.

영화에 관하여는,  https://miklos.tistory.com/8063546

 

    그러나 불가능한 꿈은 이루어졌다!

 

 

    <셜록 홈즈의 사생활>, <엘시드>, <쿼바디스>를 제작한 태들로(Tadlow) 레코드의 제임스 피츠패트릭(James Fitzpatrick)<쿼바디스>(http://blog.daum.net/miklos/8063570)를 발매한 프로메테우스 레이블의 룩 반 드 벤(Luc Van de Ven)이 불가능해 보였던 프로젝트에 도전하였다. 전곡을 모두 발굴하여 종전 디짓무비스(Digitmovies)에서 발매한 2장의 사운드트랙에서 누락된 곡까지 포함하여 로자가 쓴 모든 음악이 새롭게 연주 녹음되었다.

 

    닉 레인(Nic Raine)이 지휘한 프라하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 합창단은 극적이고 박력있는 연주로 로자의 마지막 성서사극 음악이 진정한 걸작임을 단적으로 드러내 보여준다. 무반주 합창음악을 모두 복원하여 연주한 것도 큰 장점이다. 그 동안 오리지날 사운드트랙의 템포나 다이나믹에 강박적으로 집착하여 온 태도를 벗어나 이번에는 자유로운 해석을 지향한 덕분에 템포는 사운드트랙보다 조금 더 호흡이 여유로워졌고 표현의 폭도 더 넓어졌다. 사운드트랙을 강박적이라고 할 정도로 해석의 기준으로 삼았던 <쿼바디스>(http://blog.daum.net/miklos/8063570)에서 나타나는 조급하거나 피상적인 부분들이 거의 보이지 않는다. 음악적으로 훨씬 더 설득력 있는 해석이다.

 

    물론 지휘자 닉 레인의 순 영화음악적인(?), 내달리는(?) 직선적 접근법은 여전하기 때문에, 마지막까지 몰아붙이는 박력이 정말 대단하고 연주자들도 긴장을 잃지 않고 잘 연주하지만, 악보에 담긴 다채로운 뉘앙스를 구현하며 고품위한 음향을 만들어내는 루몬 감바의 입체적인 순수음악적(?) 해석(http://blog.daum.net/miklos/8063573)이라면 어땠을까 라고 느끼게 만드는 대목도 다소 있기는 하다. 그러나 어차피 서로 가는 길이 달라 호불호가 갈리는 데다, 감바가 이 음악에 도전할 기회는 오지 않을 개연성이 클 것이니 해석의 잠재력에 대한 기대 정도로 접어두자. 여하튼, 최초로 완전 복원된, 전주곡이나 연주시간 14분이 넘는 '댐의 전투' 두 곡만 들어보더라도 변화무쌍하고 밀도가 높아 난해한 이들 곡에서 팽팽하게 긴장을 유지하며 마지막까지 달려가는 지휘자, 오케스트라 연주자들의 집중도와 역량은 아낌없이 칭찬 받을만 하다.

 

    녹음은 아주 훌륭하다. 얀 홀츠너(Jan Holzner)의 멀티 마이킹 녹음은 이 난해하고 복잡한 스코어의 중층적 레이어를 낱낱이 손에 잡힐 듯이 드러내 보여준다. 로자가 이탈리아 오케스트라를 지휘한 사운드트랙의 연주도 60년대 스테레오 음향을 통하여 대단히 아름답고 극적인 호소력을 보이고 있지만, 53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발전된 현대녹음기술이 주는 압도적인 정밀함을 통하여 이 걸작에 담긴 여러 가지 음악적 요소들을 재발견하게 되는 기쁨은 그야말로 비교불허의 수준이다. 오디오파일의 데몬스트레이션 음반으로 추천할만한 우수한 녹음이다.

 

    여기에 로자가 재구성한 곡(Theme and Answer To A Dream), 악보를 복원한 리 필립스(Leigh Phillips)가 바이올린 독주와 관현악을 위하여 편곡한 ‘Answer to a Dream'을 음반의 앞과 뒤에 실어놓은 감각도 높이 사고 싶다.

 

 

 

    이런 큰 프로젝트에서는 여러 가지 작은 실수들이 일어날 수도 있는데, 여기서는 이해하기 어려운 큰(?) 실수 하나가 눈에 들어온다. 두 번째 음반 제7번 트랙의 간주곡후반 종결부에 울려야 할 공(Gong)이 누락되어 있는 것. 악보 복원 과정의 착오이겠지만, 어떻게 제작자와 지휘자 모두 이를 놓친 것인지 안타깝다. 음악 감상 자체에는 아무런 지장이 없을지 모르나, 공 소리가 간주곡에서 2부로 넘어가는 기대감을 조성하기에 분명 '옥의 티'이다. 그러나 그냥 모르고 들으면 별 문제는 없으니 애교로 봐줄 수도 있겠다.

 

    연주와 녹음 모두 대단히 탁월한 음반이다. 깊은 감동을 받았다.

 

▤ 영상을 통하여 음반 첫 트랙을 들을 수 있다. https://www.youtube.com/watch?v=wwRAs_VdydE 

PROMETHEUS RECORDS & TADLOW MUSIC Present Sodom and Gomorrah. Composed by MIKLÓS RÓZSA.

http://www.tadlowmusic.com/2015/09/sodom-and-gomorrah-miklos-rozs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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