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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현주의 한국현대바이올린작품집

CD

by 최용성 2007. 6. 23. 1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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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클래식 음악을 듣다 보면, 민족주의와는 무관하게, 정체성에 관한 의문이 떠오를 때가 적지 않습니다. 도대체 우리 역사나 현실의 맥락에서 생겨나지 않은 서양고전음악(동시대 음악도 포함하는 넓은 의미임)을 듣는다는 것이 무슨 의미를 지니는가? 나는 왜 남의 것인 서양고전음악에 열광하는가? 우리의 역사나 현실에 터잡아 만들어진 창작 음악은 어디 있는가? 의문은 꼬리를 물게 되고 결국에는 나는 지금 여기서 왜 음악을 듣는가 라는 근본 질문에 마주하게 됩니다. 이 모든 질문에 하나의 정답이 있다고 말할 수는 없을 터이고 삶이 그렇듯이 우리는 답을 얻지 못한 채 여전히 음악을 듣습니다. 우리 음악인지 여부를 따질 때, 작곡가의 국적, 혈통, 전통적 요소를 도입하였느냐 여부 등등은 그렇게 중요한 요소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지금 여기에서 우리가 공감할 수 있는 음악이라면 우리 음악이 아닐까요. 그렇기에 1980년의 광주를 호흡한 우리에게, 학살의 역사를 전율감있게 그려낸 쇼스타코비치 교향곡 제11"1905"은 러시아산 음악이 아니라 강력한 호소력을 가진 우리의 음악으로 전위(轉位)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도 우리와 함께 지금 여기서 살아가는(또는 살다가신) 한국 작곡가의 음악을 많이 듣고 싶습니다. 우리는 아직도 김순남(한국음악사에서 가장 훌륭한 작곡가라고 생각합니다), 강석희, 나인용, 공석준, 이연국 등등이 남긴 훌륭한 음악들을 좋은 연주와 우수한 녹음의 고품질 음반으로 만들지 못하고 있습니다. 우리 음악시장이 외국음반을 소비하는 곳으로만 자리매김되어서야, 어디.

 

      음악애호가들이 음반시장의 환경을 바꾸는 데에 힘을 모으면 좋겠습니다. 우리 작곡가들의 곡을 담은 클래식 음반, 지나치게 잘못 만든 것이 아니라면 일단 사서 들으면 어떨까요?

 

    오늘 소개하는 진현주의 한국 현대 바이올린 작품집은 앨범 사진의 느낌처럼 깔끔하고 단아하게 만들어진, 멋진 음반입니다. 윤이상, 허방자, 김성기, 김현민, 이신우의 바이올린 독주곡이 수록되어 있습니다(이신우의 곡은 피아노와 함께 연주되고 나머지는 무반주임).  수록된 곡의 스펙트럼은 매우 다양합니다. 이신우의 "하나님의 어린 양" '분노'는 비극적인 조성음악으로 선율선이 분명하여 가장 듣기 편합니다. 김성기의 Quodlibet 는 민속음악적 요소를 잘 활용하여 바르톡이나 쿠르탁, 에네스쿠등의 작품세계를 연상케 합니다. 다른 작품들도 듣기에 그렇게 어렵지 않습니다. 김성기의 곡을 제외하면 수록곡들에서 민속적 요소는 그리 강하지 않습니다.

 

    진현주의 바이올린 연주는 전체적으로 여유있고 안정감이 있습니다. 현대음악의 연주에서 요구되는 신랄함을 포기하는 대신 더 많은 청중들에게 다가가고자 이런 노선을 선택한 것으로 보입니다. 녹음은 다소 건조한 편이지만, 이런 성향이 현대음악의 연주에는 더 잘 맞을지도 모릅니다. SACD로 발매되지 않은 것은 아쉽습니다. 북클릿 디자인이 멋지지만, 피아니스트의 이름을 표기하지 않은 것은 옥의 티이고, 한국인의 영어명 표기도 우리가 만든 음반이니 그냥 성()을 맨 앞에 표기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 하는 정도의 불만은 남습니다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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