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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팅이 부르는 존 다울런드: 여정과 미궁

CD

by 최용성 2007. 7. 10. 1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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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셰익스피어와 동시대를 살았던 존 다울런드의 노래를 스팅이 불렀으니 그 자체로 파격이다. 처음에는 장삿속일 거라고 지레 짐작하였다. 그러나 곰곰 생각해보니 뭔가 이상하다. 다울런드의 노래는 클래식 애호가들에게도 대중적이지 않다. 단지 상업적인 목적에서라면 왜 하필 스팅은 그를 선택하였을까.

 

    이 영상물은 스팅과 류트 주자인 카라마조프(그렇다. 카라마조프 가의 사람이다!)가 연주회에 입장하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순간 괜한 걱정이 들었다. 두 사람이 연주하는 모습만 가지고 어떻게 그 긴 시간을 끌어갈 수 있을까. 아무리 스팅이 노래를 잘하고 카라마조프가 신기(神技)에 가까운 류트 실력을 보인다고 한들 남자 두 사람의 연주회를 담은 영상물을 어떻게 계속 볼 수 있단 말인가. 그러나 모든 것은 기우에 불과하였다. 이 영상물은 정말로, 그야말로 정말 훌륭하고 흥미진진하다

 

    연주회에서 시작하여 연주회로 끝나는 구성이지만, 그 중간 중간은 다채로운 뮤직 비디오와 지적(知的)이고 통찰력 있는 인터뷰, 학자들이 나누는 이야기, 멋진 야외 풍경으로 가득 차 있어 보는 이의 눈과 귀를 즐겁게 한다. 잘 만든 다큐멘터리를 보는 듯한 구성 자체도 흥미롭지만, 스팅과 카라마조프를 다양한 공간 속에영국 뿐만 아니라 이탈리아의 멋진 풍경도 나온다배치하여 탐미적으로 보여주는 영상은 놓칠 수 없는 구경거리이다. 심지어 4명의 스팅이 한 자리에 모여 앉아 서로를 바라보며 다성부(多聲部)를 부르는 놀라운 장면도 볼 수 있다. 많은 사람들의 아이디어와 노력이 풍부하게 구현된 흔적이 역력하다.

 

    영상의 화질은 DVD 포맷의 한계에서 구현할 수 있는 극상의 수준이다. 마치 HD 영상물을 보는 듯한 착각이 생길 정도. DTS로 아름답게 재생되는 음악은 마치 존 다울런드가 스팅을 위하여 작곡한 것같다. 정격연주를 전문으로 하는 성악가들에 의하여 다소 도식적으로 불리던 다울런드가 아니다. 스팅이 다울런드를, 다울런드가 스팅을 살려내고 있다. 같은 말이 에딘 카라마조프와 다울런드, 에딘과 스팅 모두에게도 그대로 적용된다. 찰떡궁합도 이런 궁합이 없다. 지적이고 창의적인 스팅과 에딘 카라마조프에 의하여 존 다울런드는 21세기에 새로이 부활하였다. DVD가 끝나면 존 다울런드의 여정(旅程)을 따라 길고 긴 여행을 다녀온 느낌이 든다. ‘여행과 미궁을 영상물의 제목으로 채택한 것은 더 할 나위 없이 적절해 보인다

 

    유일한 아쉬움이 있다면 노래를 부를 때에는 한글자막이 지원되지 않는 점 정도일 것(내지에는 가사 번역문이 제공되어 있다). 보너스 피쳐도 풍부한데, 특히 에딘 카라마조프의 류트 반주 위에 펼쳐지는 스팅의 오리지날 곡을 들을 수 있어 좋았다. 8곡을 수록한 CD도 보너스로 제공된다. 강력하게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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