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0년대는 서구사회의 기성 가치관에 대한 도전이 활발했던 시기이다. 영화음악 장르에서도 팝/락 음악이 주류로 등장하면서 교향악적 극음악의 전통을 몰아낸다. 아이러니한 것은 기성세대에 반기를 들었던 이들 음악이 상업주의와 결부되어 영화음악을 천편일률적으로 바꿔놓았다는 것. 그 결과 드라마의 맥락보다는 히트송이나 인기 멜로디 한 두 개를 만들어내느냐 여부에 영화음악의 성패를 거는 일이 횡행하게 되었다. 이런 척박한 풍토에서는 독창적인 천재가 나타나기 쉽지 않다. 그래서 나는 엔니오 모리코네의 등장을 1960년대 영화음악사의 일대 사건으로 규정하고 싶다. 모리코네가 ‘무법자’ 3부작에서 들려준 음악은 새로운 영화에 미학적으로 들어맞는 새로운 음향의 실험이었다. 휘파람과 기타, 휩, 질러대는 듯한 보컬이 만들어내는 원시적이고 야성적이면서 간결한 사운드는 강한 충격과 신선함을 주었다. 그러나 어떤 음악이든 그 안에 가슴이 시리도록 아름다운 이탈리아의 서정을 담고 있는 것이 모리코네의 진정한 미덕이라고 필자는 생각한다. 그의 초기 영화음악이 실험적이고 파격적인데도 대중들이 열광한 이유는 다른 데에 있지 않다. 엔니오 모리코네는 본질적으로 서정시인이기 때문.
그 모리코네가 생애 최초로 아카데미 상을 수상하였다. 그것도 작곡상이 아니라 공로상이니, 모리코네를―이탈리아 출신에 대한 편견 때문일 것이라는 말들이 있다―오랫동안 외면하여 온 아카데미가 양심의 가책을 덜기 위한 고육책을 썼다는 비아냥도 생길만 하다. 그래도 아직 늦지 않아 다행이고 진정 축하할 일이다. 엘머 번스타인(십계, 앵무새 죽이기, 황금팔을 가진 사나이, 황야의 7인), 제리 골드스미스(오멘, 빠삐용, 원초적 본능, 토탈 리콜, 스타트렉), 베이질 폴두어리스(코난, 붉은 10월호, 로보캅, 스타쉽 트루퍼스) 등과 같은 거장들이 세상을 떠나고 있는 것을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모리코네의 아카데미 상 수상을 기념하기 위하여 수많은 인기 아티스트들이 참여하여 헌정앨범을 만들었다. 모리코네 자신도 몇 개의 트랙을 직접 지휘하였고 음반에 통일성을 부여하기 위하여 곡들 사이에 ‘다리’를 만들어 놓았다. 모리코네 곡들의 아름다움이야 여전하고 당대의 아티스트들은 최선을 다하여 세련되게 연주한다. 그러다보니 모리코네의 음향이 갖는 전위적 야성은 어디론가 증발한듯하다. 어차피 이런 종류의 음반은 오리지날을 선호하는 이들이나 통일된 컨셉을 가진 앨범을 좋아하는 이들을 위한 것이 아니다. 다양한 동시대 음악계의 스타들이 나와 자신들의 기량을 서로 뽐내는 버라이어티 잔치를 한 판 즐긴다는 기분으로 들어야 할 음반이다. 각자의 취향에 따라 좋아하는 트랙이 현저하게 갈릴 수밖에 없다는 말이다(내 취향은 ‘트로피컬 배리에이션’이다). 그리고 그것으로 충분하다. 축하합니다, 그리고 건강하게 오래 사세요. 엔니오 모리코네 선생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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