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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너드 페나리오(1924. 7. 9.-2008. 6. 27.)

음악가와 음악

by 최용성 2008. 7. 6. 1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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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시대를 풍미했던 예술가들은 많은 사람들의 기억 속에 남는 것같지만, 실은 대부분 잊혀지기 쉽습니다. 우리 나라의 음악애호가들 중 미국 피아니스트 레너드 페나리오(Leonard Pennario)를 기억하는 분들이 얼마나 될까요. 페나리오는 황금기의 거장들이 아직 활동하던 시대에 나타났고, LP 시대에 미국에서 큰 인기를 얻었습니다. 특히 헐리웃 볼에서 그의 명성은 자자하였고, 그가 캐피톨 레코드(미국 EMI)에서 모노 시절부터 낸 숱한 음반들 중에는 베스트 셀러도 많았습니다. 1990년대까지 활동했다고는 하지만, 그의 전성기는 아무래도 50년대와 60년대였다고 보아야 할 겁니다. 중요 레코딩도 그 시기에 집중되어 있으니까요. CD 시대가 도래한 이후 갑자기 페나리오의 명성은 시들해진 것처럼 보입니다. 우선 레코딩 수가 현격히 줄어 들었고, 그것도 마이너 레이블에서 간헐적으로 이루어졌습니다. 심지어 그가 전성기 시절 발매한 독주곡 또는 협주곡 음반들 중에 좋은 연주가 많은데도 CD로 재발매된 수도 아주 적습니다. 게다가 미국 EMI에서 일부 재발매된 그의 음반은 우리 나라에는 거의 수입도 되지 않았습니다. 오늘날 우리 나라에서 페나리오를 기억하기 어렵게 된 이유 중 하나이겠지요.

 

100만불 트리오. 시즌 2. 왼쪽부터 야샤 하이페츠, 레너드 페나리오, 피아티 피아티고르스키

 

    오늘날 그의 이름은 주로 백만불의 트리오로 불리웠던 하이페츠, 피아티고르스키, 루빈스타인이라는 황금팀에서 뒷날 루빈스타인의 자리를 대신한 것으로 기억되곤 합니다 페나리오는 20세기 작품들을 비롯하여 낭만주의 레퍼토리에서 뛰어난 실력을 발휘하였지만, 헐리웃 볼에서 활약한 사람답게 대중 앞으로 다가가는 데에 조금도 주저하지 않았던 사람입니다. 심지어 영화 <줄리>의 음악인 피아노곡 <벼랑 위의 밤>(Midnight on the Cliffs)을 작곡하기도 하였지요. 사적인 자리에서도 별 거부감없이 자신이 편곡한 영화음악 연주를 들려줄 정도로 그에게는 클래식 음악을 한다는 일부 사람들의 오만과 편견따위는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독일, 프랑스, 영국, 러시아의 쟁쟁한 피아니스트들이 누리는 권위가 그에게는 없었던 걸까요? 수많은 거장 피아니스트들이 있는데, ‘유럽 클래식의 변방인 미국에서 인기를 끌었던 가벼운피아니스트 하나 쯤은 잊어도 된다고 사람들은 생각한걸까요. 오늘날 적은 수의 음반이나마 그의 연주를 들어보면 이렇게 망각되어도 좋을 연주자는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의 해석과 연주에는 음악을 즐기는 사람의 단순질박하고 명쾌한 건강함과 집중력이 있습니다. 거장은 중후하고 심오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면, 페나리오를 거장이라고 부를 수 없을 겁니다. 그러나, 왜 거장의 성격이 한 방향으로 한정되어야만 합니까. 페나리오의 연주에는 요즘 음악가들이 뜻밖에 잘 놓치고 있는 음악의 핵심이 담겨져 있습니다. 바로, ‘이라는 글자 그대로, 즐거움이지요.

 

미클로시 로자와 레너드 페나리오

 

   레너드 페나리오는 미클로시 로자(Miklos Rozsa)의 피아노 협주곡, 작품 31, 피아노 소나타, 작품 20, 피아노 5중주, 작품 2, 스펠바운드 협주곡, 그리고 영화음악의 피아노 편곡에 이르기까지 음반으로 남길 정도로 로자 음악의 전도사로 활약하였습니다. 미클로시 로자에게 피아노 협주곡을 위촉한 사람도 레너드 페나리오였지요. 피아노 협주곡의 초연은 1966년 쥬빈 메타가 지휘하는 로스앤젤레스 필하모닉과의 협연으로 이루어졌지만, 녹음은 한참 뒤인 1982년에 빌프레드 뵛쳐(Wilfried Böttcher)가 지휘하는 바이에른 방송 교향악단의 협연으로LP 수록 시간의 제약 때문에 마지막 악장 일부가 축약되었다고 합니다이루어졌습니다. 야노스 슈타케르(Janos Starker), 모셰 아츠몬(Moshe Atzmon)이 지휘하는 뮌헨 필하모닉 오케스트라가 연주한 로자의 첼로 협주곡과 커플링된 이 세계최초녹음 음반은 LP와 CD 두 포맷으로 모두 발매된 좋은 연주이지만, 안타깝게도 현재는 모두 절판된 상태입니다

 

   

    최근에 그의 캐피톨 초기 시절 녹음을 묶은 4장의 세트가 나왔습니다. 주로 모노 녹음이고 연주마다 기복이 있는 편이지만, 여기서 미클로시 로자의 피아노 소나타 세계초연녹음을 들을 수 있습니다. 로자 팬들 사이에서는 위대한 전설적 연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그밖에도 미국 EMI(캐피톨)에서 나온 라흐마니노프 협주곡 제3번과 파가니니 변주곡, 거쉬인 음반도 상당히 설득력 있는 명연입니다.

 

    그냥 잊어버리기에는 그의 음악적 업적은 녹록치 않습니다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 부고기사는 http://www.nytimes.com/2008/06/28/arts/music/28pennario.html?_r=1&ref=obituaries&oref=slogin  

 

레너드 페나리오가 RCA에 남긴 모든 녹음을 2019년에 12장의 앨범에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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