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음기술 덕분에 작곡가의 자작 자연을 들을 수 있게 된 것은 재생음악 시대의 음악애호가들이 누리는 호사 중 하나이다. 연주를 평할 때 흔히 작곡가의 의도를 가장 잘 재현하였다느니, 작곡가가 아닌 연주자 자신을 앞세웠다느니 하는 표현들을 쓴다. 이 경우 전자를 진정 훌륭한 연주라고, 작곡가를 앞세우는 연주자야말로 진정한 거장이라고 칭찬하는 것이 보통이다. 그렇다면 작곡가의 자작 자연이야말로 가장 훌륭한 연주여야 하지 않겠는가? 작곡가 자신보다 그의 작품을 더 잘 알고, 어떻게 표현할지 ‘유권’ 해석할 수 있는 사람이 달리 있겠는가? 스트라빈스키처럼 수많은 자작자연을 남긴 작곡가라면 더더욱 그가 지휘한 음반이 영원한 표준이 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그러나 세상살이는 그리 단순하지 않으니 재미있다. 작품은 작곡가의 손을 떠난 순간 스스로 존재한다. 그리고 작곡가 자신보다 더 훌륭하고 뛰어나게 작품의 잠재력을 재현하는 거장들도 나온다. 그래서 창작할 수 없는 우리들 보통 사람도 한껏 교만해져 말할 수 있다. 이 곡에 관한 한, 작곡가 당신은 입 좀 닥치시오 라고.
스트라빈스키의 음악은 리듬이 강렬하고 관현악의 강약이나 색채 대비가 현란하다. 시대를 앞선 음악이었음에도 사람들의 마음을 쉽게 사로잡은 이유는 그의 음악이 인간의 원초적 본능―폴 버호벤의 영화처럼 살인충동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을 일깨우는 주술적인 마력이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통상의 고전파 혹은 낭만파 음악에 비하여 최신 녹음기술로 포착해낸 연주가 훨씬 더 유리하다. 블레즈가 지휘한 3악장 교향곡의 풍성함과 여유로움, 로버트 크래프트가 지휘한 속주하는 아곤과 아폴로에서 만들어지는 다채로운 음향, 샤이가 지휘한 화려한 색채의 불새 등과 같이 스트라빈스키 연주 전통이 장기간 축적된 이후 나타난 디지털 시대의 명연들과 비교하여 볼 때 스트라빈스키의 BBC 실황음반에서 아쉬운 것은 바로 이러한 음향적 측면이다. 음질 좋은 명연을 능가할 정도로 감동적이라고 하기 어려운데다가 1958년 녹음임에도 모노이다. 더 아쉬운 점을 지적하자면 그해 11월 10일 런던 날씨가 별로 좋지 않았는지 심할 때는 마치 기침 경연대회를 듣는 것같다.
종래부터 스트라빈스키의 자작 자연은 객관적이고 냉정하다는 평을 받아 왔는데, 제대로 그것을 들어본 일이 없는 나로서는 BBC의 실황음반에서 특별히 그런 점을 느끼지는 못했다. 스트라빈스키의 해석은 들고 나감이 분명하여 명쾌하고, 애매함이 없다. 작곡가들의 자작 자연은 의외로 단순하고 소박한 면이 있는데, 스트라빈스키도 예외는 아니고 이 점이 그의 음악이 지닌 원시적 명료성을 나타내는 데에 유리하게 작용하고 있다. 단 한 번의 라이브 녹음임을 감안하면 놀랄만큼 훌륭한 연주이지만, BBC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앙상블은 살짝 거칠다. 그런데 그 점도 곡의 특성과 잘 들어맞는다. 모노 녹음의 리마스터링도 상당히 잘 되어 있어 음상이 선명하다. 기념비적인 녹음임에는 틀림없지만, 음향의 한계와 기침 부대의 기습으로 말미암아 이 음반을 누구에게나 보편적으로 추천하기는 어려울 것같다.
글래스? : 사랑의 레시피(No Reservations) (0) | 2010.07.02 |
---|---|
헝가리안 앨범-과르네리 4중주단 (0) | 2009.06.04 |
크레메르가 연주하는 패르트, 글래스, 마르티노프 (0) | 2009.04.25 |
마이 페어 레이디(My Fair Lady) (0) | 2009.04.06 |
즈나이더(Znaider)의 브람스와 코른골트 (0) | 2009.03.18 |
댓글 영역